스키점프대표 최흥철 최서우 김현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스키점프가 열릴 평창 알펜시아의 점프대 앞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스키점프 국가대표 최흥철 최서우 김현기(왼쪽부터)의 몸놀림이 가볍게만 보인다. 태극마크만 22년째, 스키점프가 곧 이들의 인생이 됐다. 평창=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주말이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과박스를 만들었다. 인형 탈을 쓰고 홍보 도우미도 했다. 제대로 된 유니폼이 없어서 1년에 한두 벌로 버티다 찢어진 옷을 입고 경기에 나선 적도 있다. 막노동은 기본이고 온갖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때는 영화에도 소개되며 관심도 받았다. 그러나 짧게 빛났던 날 뒤에는 또다시 오랜 그늘이 찾아왔다. 그래도 이들은 버텼다.
외국 선수들은 놀라서 묻는다. “아직도 너희들이 국가대표인가?”
다른 선수들이 스키점프에 도전하기는 했다. 그러나 힘들어서 대부분 포기했다. 결국 이들만이 또 버티고 살아남았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6번째 올림픽 출전을 꿈꾸는 최흥철(36), 최서우(개명 전 최용직·35), 김현기(34·이상 하이원)다. 6번째 올림픽 출전은 빙상의 이규혁(39·은퇴)과 함께 국내 선수 올림픽 최다 출전 타이 기록이다.
그들을 버티게 해준 것은 그늘 속의 자부심이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무감이었다. 김현기는 “국내 스키점프 1세대인 우리가 은퇴해 버리면 한국 스키점프의 역사가 끊길 수 있다”며 “우리가 버텨내고 한국에 스키점프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야 저변 확대를 기대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스키점프 역사의 ‘산증인’인 이들의 ‘한솥밥 생활’은 1991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무주리조트가 인근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스키점프 꿈나무를 모집했을 때 세 선수가 합격한 것이다. 최흥철은 스키점프에 관심이 많은 친형을 따라갔다가, 최서우는 일반 스키 선수를 뽑는 줄 알고 찾아갔다가 덜컥 선수가 됐다. 김현기는 이색 스포츠 마니아인 아버지의 권유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주말마다 해외에서 치러지는 대회를 함께 다니기 때문에 이들은 1년 중 300일가량을 함께 훈련한다. 지금까지 7800일가량 한솥밥을 먹은 셈이다. 최흥철은 “휴가 정도를 빼고는 항상 셋이 함께 있다. 장가도 못 가고, 여자 친구도 없는데 큰일이다”고 했다.
비인기 종목인 스키점프 선수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제대로 된 훈련시설도 없고, 훈련비도 부족했던 탓에 이들은 선수 생활 초기에 경비를 마련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주말마다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2009년 개봉한 영화 ‘국가대표’ 포스터.
영화의 인기 속에 그해 9월 대표팀 선수 전원이 실업팀(하이원)에서 한솥밥을 먹게 돼 안정적 지원을 받게 된 것은 다행이었지만 스키점프에 대한 관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영화 개봉 직후에는 1인당 모델료 200만∼300만 원을 받고 광고를 3편 촬영했고, 생애 처음으로 사인회에도 4번이나 참가했지만 이러한 관심도 잠시뿐이었다. 당시 대표팀 선수였던 강칠구 현 노르딕복합 코치(33·스키점프 트레이너)는 “3개월 정도는 우리에게 관심이 쏟아졌지만 이후 다시 무관심 속에 선수 생활을 해야 했다. 또한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 한 명도 결선 최종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하는 부진을 겪으면서 스키점프에 대한 이미지까지 추락했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점은 모처럼 일었던 스키점프 붐이 저변 확대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스키점프를 해보고 싶다는 사람들의 e메일 문의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이들을 가르쳐줄 코치도 부족했고 훈련을 위해 강원도에 정착해야 한다는 점, 쉽게 배울 수 없는 종목이기 때문에 5~6년을 훈련해야 재능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 등의 문제 때문에 새로운 선수 발굴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2009년 당시 유럽의 스키점프 강국들은 이미 수천 명의 대표 후보군을 확보했고, 일본은 선수가 600명에 달했다. 하지만 한국 스키점프는 2017년 현재에도 국제대회에 나설 수 있는 선수가 대표팀 3명을 포함해 8명에 불과하다.
최흥철 등 세 명의 선수는 선수 생활을 계속하며 스키점프의 명맥을 유지하는 길을 택했지만, 당시 대표팀 막내였던 강 코치는 다른 길을 택했다. 그는 후배 양성을 위해 지난해 5월 선수 생활을 접고 코치의 길을 택했다. 강 코치는 “지금은 노르딕복합에서 스키점프 종목을 담당하지만 이를 디딤돌 삼아 언젠가는 스키점프 선수 양성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대표팀에 남은 형들에게는 막내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김현기는 “이제 홀수가 되다 보니 휴식 시간에 함께 다른 운동 종목을 즐길 수도 없어요. 축구도 농구도 짝이 맞아야 할 수 있는 것인데…”라고 말했다.
스키점프 훈련은 점프대까지의 이동 시간이 길고 점프 시 체력 소모가 크기 때문에 반복 훈련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선수들은 점프 한 번을 할 때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최서우는 “오전, 오후로 나눠서 훈련을 하는데 한 번의 훈련 시간(1시간 반∼2시간) 동안 적게는 5번, 많아야 7∼8번 점프를 한다. 농구 선수들은 1000번 이상 슛을 시도해 감각을 가다듬지만 우리는 반복 훈련을 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 번을 점프하더라도 자세와 점프의 느낌 등에 대한 강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평창 겨울올림픽에서의 선전을 통해 다시 한 번 스키점프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김현기는 “선수 생활 하는 동안 자국에서 올림픽에 출전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그동안 힘든 선수 생활을 참고 해온 것도 국내 스키점프를 살리고 싶어서였다. 더 좋은 환경이 만들어질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이 날아갈 때의 속도는 시속 100∼120km. 어디서든 불어온 바람이 몸을 건드리면 중심을 잃을 수 있다. 최흥철은 “사람들은 우리가 하늘을 날 때 경기장 주위의 화려한 풍경과 환호하는 팬들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보는 것은 오직 착지점뿐이다”고 말했다. 안전한 착지를 위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말이지만 선수 생활의 마지막 지점에 가까이 가고 있는 그들이 한국 스키점프를 위해 남길 유산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은 말이라고도 했다.
일반인이라면 아찔한 현기증을 느낄 만한 높이 130m의 점프대. 그들은 또다시 그곳에 선다. 수없이 날아올랐으나 또다시 날아오르고자 한다. 비상(飛上)을 향한 꿈은 쉬지 않는다. 비록 찰나에 그칠지라도. 그 꿈은 자신과 타인을 동시에 향하고 있다.
평창=정윤철 trigger@donga.com·임보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