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같은 형용모순은 세상사의 이면을 새롭게 밝혀준다.
하정민 디지털통합뉴스센터 차장
이처럼 상반된 어휘를 결합하는 수사법을 ‘형용모순(Oxymoron)’이라 한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이 말은 날카롭고 예리하다는 옥시(oxy)와 바보나 저능아라는 모론(moron)의 합성어다. 즉 ‘똑똑한 바보’라는 말 자체에 모순이 담겨 있다.
형용모순은 극적 긴장감을 조성하고 감정의 미묘한 떨림을 일깨우는 데 효과적이다. 예술가들이 즐겨 쓰는 이유다. 청마 유치환이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만해 한용운이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고 했을 때 누구도 논리 오류를 문제 삼지 않는다.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단어들이 빚어내는 특별한 뉘앙스에 오히려 감동을 받는다.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가 팝 역사에 남을 명곡이 된 것도 비슷한 이치다.
과거에 공존할 수 없을 것 같던 상반된 가치와 개념이 대등한 힘을 갖고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다. 날로 복잡다단해지는 세상에서 형용모순이 늘어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특히 단선적 사고로 해결할 수 없는 갖가지 문제가 산적한 현대 사회는 오히려 ‘사회적 기업’과 같은 창의적 형용모순을 절실히 요구한다.
기업의 존재 이유를 이윤 극대화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기업은 일종의 말장난일 수 있다. 하지만 신발 한 켤레를 판매할 때마다 빈곤국 어린이에게 신발을 기부하는 탐스슈즈, 환경보호와 공정무역에 앞장서는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지역 주민의 창업을 후원하는 자포스 등 사회적 가치를 우선하면서도 피 튀기는 경쟁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형용모순이 일반화된 시대일수록 메시지의 내용이 아니라 진정성이 중요하다. ‘증세 없는 복지’는 대통령 박근혜를 만든 일등공신이었지만 지금은 그의 무능을 상징하는 동의어로 쓰인다. 반 전 사무총장이 진보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하기 전에 본인의 삶과 이력을 통해 이 말의 진정성부터 보여주지 못한 점이 아쉽다.
하정민 디지털통합뉴스센터 차장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