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가 조지 6세(말더듬는 왕을 소재로 한 영화 ‘킹스 스피치’의 실제 주인공)를 이어 왕위에 오르기 나흘 전, 한국에선 장차 ‘공주’로 세간에서 불리게 되는 아기가 태어났다. 박근혜 대통령이다. 두 사람은 61년 뒤인 2013년 11월 5일 런던 버킹엄궁에서 만난다. 이날 엘리자베스 여왕은 대영제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이끈, 박 대통령이 평소 롤 모델이라고 했던 처녀여왕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초상화를 선물했다.
▷‘로열패밀리’도 오리지널은 다르다. 엘리자베스 2세는 공주 시절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부친을 설득해 영국 여군부대에 자원입대했다. 보급차량 운행 임무를 맡아 트럭 바퀴를 교체하고, 흙바닥에서 차량을 정비하며 또래들과 함께 복무했다. 1992년 윈저 성 화재 복구에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는 데 비판 여론이 일자 왕실의 면세특권을 스스로 포기하기도 했다. 즉위 60주년인 2012년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빅토리아 여왕, 엘리자베스 1세를 제치고 영국의 가장 위대한 국왕으로 꼽힌 배경이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