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호 사회부 차장
당시 세림 양 어머니의 오열이 눈앞에서 본 것처럼 지금도 선명합니다. “아저씨, 우리 아기 어디 있어요? 우리 아기 보여주세요.” 신문기사 첫 문장에 적힌 세림 엄마의 절규가 제 가슴을 때렸습니다.
세림 양 사고 후 이제 막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둘째 아이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세림 양과 같은 세 살이었습니다. 둘째 아이 역시 매일 아침 통학차량을 탔습니다. 25인승에 동승자가 있는 버스입니다. 세림 양 사고 때와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한동안 아이가 배꼽인사를 하며 버스에 오르는 모습이 떠올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아마 당시 어린 자녀를 둔 엄마 아빠의 마음이 다 비슷했을 겁니다.
딸을 떠나보낸 세림 양 부모는 말 그대로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통학차량 안전기준을 강화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에 딸의 이름을 허락했습니다. 악몽이 들춰지는 고통을 감수하고 용기를 낸 이유는 분명합니다. 더 이상 안타까운 희생이, 다시는 자신들처럼 아파할 부모가 나오지 않기를 바랐던 겁니다. 마침내 법이 만들어지자 세림 양 아빠는 “하늘나라의 세림이에게 좋은 선물을 전해주게 됐다. 모든 어른이 세림이법을 잘 지켜 아이들이 안전한 세상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아마 그때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도 같은 소원을 빌었을 겁니다. 또 믿었을 겁니다. 이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태권도장 축구교실에 마음 편히 보낼 수 있다고…. 세림이법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5년 1월에야 시행됩니다. 더딘 출발도 마뜩잖은데 유예기간을 2년이나 뒀습니다. 15인승 이하 차량에 법 적용을 미룬 겁니다. 영세 학원의 준비를 위한 조치였습니다. ‘그래,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니까….’ 기자의 머리로는 이렇게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아빠의 가슴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광주와 전남 여수, 충북 청주 등 전국 곳곳에서 어린 생명들이 스러졌습니다. 찜통 버스에 8시간 넘게 방치됐다가 중태에 빠진 어린이도 있었습니다. 지난달 23일에는 전남 함평에서 여덟 살 여자아이가 합기도장 차량에 치여 숨졌습니다. 세림이법 전면 시행(1월 29일)을 엿새 앞둔 날이었습니다.
세림이법은 이제야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당장 다음 달 초등학교에 입학해 축구나 농구 교실을 다니는 아이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체육시설 차량은 아예 세림이법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어른들은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이성호 사회부 차장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