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진균 정치부 차장
조기 대선 정국이 본격화하면서 대선 주자 부인들은 내조 경쟁에 돌입했다. 예전에는 남편의 건강을 챙기는 조용한 ‘내조형’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부인들의 역할도 바뀌고 있다. 남편보다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역할을 확장하고 있다. ‘정치적 동반자’인 셈이다. 지난달 퇴임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는 퍼스트레이디를 넘어 백악관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정치인의 배우자는 여전히 가장 힘든 자리 중 하나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부인 김정숙 씨는 전국 구석구석을 다니며 소통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전형적인 ‘가교형’ 내조다. 2012년 대선 때 김 씨는 ‘유쾌한 정숙 씨’라는 별명을 얻었다. 항상 밝은 얼굴과 살가운 대화로 캠프와 유세 현장의 활력소가 됐기 때문이다.
김 씨는 지난해 9월부터 매주 화요일이면 1박 2일 일정으로 광주를 찾아 호남의 밑바닥 민심을 직접 듣고 이를 문 전 대표에게 전달했다. “사진 찍으러 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언론사 취재는 철저히 거부했다. 5개월이 넘는 ‘조용한’ 그녀의 광주 방문은 입소문을 타고 퍼졌고 호남의 민심도 조금씩 변했다. 광주의 한 지인은 “얼마 전 식당에 갔더니 식당 주인과 김 씨가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예전 같으면 손님들 욕 나올까 봐 절대 걸어 놓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김 씨를 향해 “너무 나댄다”는 말도 나왔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부인 민주원 씨는 학생운동을 할 때부터 정치철학을 공유하고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동지형’ 내조를 하고,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의 부인 김혜경 씨는 강경한 이 시장의 이미지를 누그러뜨리고 남편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인터뷰에 적극 응하는 ‘대변인형’ 내조에 치중하고 있다.
내조의 형식은 후보 부인마다 각양각색이지만 정치인 부인의 가장 큰 역할에 대한 의견은 대부분 일치한다.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한다” “오랜 참모도 꺼내기 힘든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편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조연이 아닌 ‘최후의 참모’ 역할을 하는 주연이라는 뜻이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