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만 문재인, 찍어야 하나” “철학적 화법 안희정, 왠지 어려워”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달 25일 국회의원들과의 비공개 조찬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권이 자신에게 씌운 ‘반반(半半) 프레임’을 의식하다 페이스를 잃었다는 한탄이었다. 반 전 총장은 일주일 뒤 불출마를 선언했다.
대선 국면이 본격화하면서 대선 주자들 간 프레임 경쟁도 가열되고 있다. 프레임은 선거를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인식 틀이다. 하지만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자칫 자신이 빠져나올 수 없는 프레임에 갇힐 수도 있다는 얘기다.
범여권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경우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순간 ‘어부지리의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지금은 ‘이미지의 정치’가 가능하지만 진짜 후보가 되는 순간 유권자의 판단 잣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윤종빈 명지대 교수는 “국민이 황 권한대행을 정상적인 경쟁을 거치지 않은 ‘꽃가마 후보’라고 규정하는 순간 그가 어떤 메시지를 내놓아도 흡인력이 뚝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특유의 진지하고 철학적인 화법이 오히려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지도자의 자세 등에 대한 거대 담론이 중도보수 성향의 지식인층에 어필하는 측면도 있지만 구체적인 이슈에 대한 야권 지지 기반의 갈증을 해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안 지사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직설 화법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노 전 대통령은 “양념이 많이 들어가면 느끼하다”며 “과다한 수식이나 현학적 표현은 피하는 게 좋다”고 말한 바 있다.
탄핵 정국에서 선명한 견해를 제시한 ‘사이다 화법’으로 단숨에 대선 주자 반열에 오른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특유의 ‘파이터 이미지’가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그의 거침없는 화법으로 일시적 팬덤 현상을 만들 수 있었지만 국가 지도자로서의 안정감을 주는 데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평가가 있다. 비슷한 예로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거침없는 발언으로 초반 화제를 모았지만 ‘파이터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는 중도층의 인기를 바탕으로 성장했지만 중도층의 지지가 빠지면서 ‘지지율 15%’의 벽을 넘는 게 최대 숙제가 됐다. 지지율 15%를 확보하지 못하면 사표(死票) 방지 심리가 작동해 안 전 대표의 지지자들마저 전략적으로 후보를 갈아탈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결국 안 전 대표가 공략 대상인 중도층의 마음을 얻으려면 다시 안철수식 ‘새 정치’가 뭔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