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속사포 질문 쏟아낸 최순실…눈길 한번도 안 준 고영태

입력 | 2017-02-07 03:00:00

최순실-고영태 법정서 첫 만남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와 최 씨의 측근 고영태 씨(41)가 6일 국정 농단 사건이 터진 뒤 처음으로 법정에서 마주쳤다. 고 씨는 한때 최 씨의 도움으로 ‘빌로밀로’라는 가방업체를 운영했고, 최 씨가 세운 더블루케이에서도 일했다. 두 사람은 최 씨의 또 다른 측근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48·구속 기소)이 “내연관계로 추측된다”고 증언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하지만 이날 재판에서 고 씨는 최 씨 쪽으로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은 채, 최 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쏟아냈다. 최 씨는 고 씨가 증인석에 들어설 때부터 줄곧 노려봤고, 재판 막바지에는 직접 고 씨에 대한 신문에 나섰다. 하지만 고 씨는 답변을 하면서도 끝내 최 씨의 눈길을 피했다.

○ 2m 거리에서 눈도 안 마주친 고영태·최순실

고 씨는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최 씨와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최 씨가 앉은 피고인석과 고 씨가 앉은 증인석은 불과 2m 거리. 최 씨는 한때 최측근이었던 고 씨가 자신과 관련된 의혹들을 앞장서 폭로하는 것을 지켜보며 불편한 심기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고 씨의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한숨을 쉬거나 머리카락을 만지며 답답해하기도 했다.

증인석에 앉은 고 씨도 불편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검찰과 변호인 양측의 질문에 차분한 목소리로 답변을 이어갔지만, 최 씨가 옆에 앉아있음을 의식한 듯 종종 마른침을 삼키거나 옷깃을 매만지며 긴장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더블루케이의 실제 운영자가 누구인지를 놓고 고 씨와 최 씨 양측은 치열하게 다퉜다. 최 씨 측은 고 씨에게 “일일이 (더블루케이의 업무) 보고를 받은 것을 보면 증인이 더블루케이의 실질적인 운영자 아닌가”라고 몰아세웠다. 고 씨는 “더블루케이가 내 회사라면 내가 잘릴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며 “최 씨의 집안일은 물론 심부름, 고장 난 차 수리 등 사적인 일까지 도와줬다”고 밝혔다.

최 씨는 재판이 끝나기 직전 10여 분간 고 씨를 상대로 직접 질문에 나섰다. 최 씨는 “(더블루케이의) 가이드러너 사업, 펜싱팀 등은 고 씨가 적극 개입한 일”이라며 “(고 씨 등) 모든 사람이 공범이지, 내가 사익을 취하려고 한 일이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이에 고 씨는 “어떤 프로젝트도 내가 먼저 제안한 적이 없다”고 맞섰다.

최 씨는 또 “‘고민우’로 개명을 하려다 마약 전과 때문에 못하지 않았느냐”며 고 씨를 몰아세웠다. 고 씨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최 씨의 질문이 쉴 틈 없이 이어지자, 재판부가 “(고 씨의) 답변을 하나씩 듣고 질문을 하라”고 제지할 정도였다.

헌법재판소가 증인 출석요구서를 보내려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잠적설에 휘말렸던 고 씨는 이날 남색 코트 차림으로 법원에 나타났다. 헌재는 사무처 직원 2명을 법정에 보내 고 씨에게 탄핵심판 증인 출석요구서를 전달하려 했다. 하지만 고 씨는 출석요구서 수령을 거부했다. 고 씨는 “8일 이전에 직접 헌재로 연락을 하겠다”고 말했다.

○ 최순실 측, 고영태 사생활 거론하며 신경전

고 씨는 최 씨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선 ‘가까운 관계’라고 설명했다. 고 씨는 “류상영 전 더블루케이 부장과 내가 옆에서 직접 본 결과 (최 씨는) 청와대에 옷 때문에 왔다 갔다 하고 마치 청와대 비서들을 개인비서처럼 대했다”며 “‘박 대통령을 위해 일한다’ ‘박 대통령과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일한다’는 말을 자주해서 둘의 관계가 가까운 걸로 안다”고 말했다.

고 씨는 박 대통령 탄핵심판 변호인단의 ‘내연관계’ 발언에 대해서는 “역겹다. 신성한 헌재에서 인격을 모독하는 게 국가원수 변호인단이 할 얘기인지 한심하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날 재판에선 한 방청객이 재판 도중 최 씨를 향해 고함을 치다가 퇴정당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날 재판을 지켜보던 한 여성 방청객은 최 씨 변호인이 고 씨를 증인신문하던 중 “증인을 왜 다그치나? 돈이 그렇게 좋냐”고 소리쳤다. 이에 재판장은 “법정에서 소란을 피우면 감치될 수 있다”고 주의를 줬지만 여성 방청객이 계속 목소리를 높이자 결국 퇴정을 명령했다.

○ 박 대통령 측, 탄핵심판에 검사 2명 증인 신청

박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단은 이날 헌재에 국정 농단 사건 수사를 했던 검찰 특별수사본부 검사 2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박 대통령 측은 수사 검사들을 증인으로 신청한 데 대해 “최 씨와 안 전 수석 사이에서 기업인 김모 씨가 ‘메신저’ 역할을 한 사실을 확인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박 대통령 측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경위에 대해 A4용지 22쪽 분량의 의견서도 제출했다. 박 대통령은 의견서에서 “재단 정관을 보면 설립자는 출연 기업들이고, 박 대통령이나 최 씨는 재단과 무관하다”며 “박 대통령과 최 씨가 재단을 장악하거나 자금을 움직일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권오혁 hyuk@donga.com·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