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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전문기자의 기업가 열전]국내 첫 인터넷쇼핑몰 연 벤처 1세대

입력 | 2017-02-08 03:00:00

<29> 이기형 인터파크 회장




이기형 인터파크 회장은 “시장이 커지고 있는 해외 직구 및 역직구 사업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김상철 전문기자

전북 익산에서 10남매(6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많은 자식을 먹여 살리려고 농사를 지으면서 닥치는 대로 부업을 했다.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을 만큼 강하고 자존심이 셌다.

“등록금이 싼 서울대에 못 갈 거면 막노동이나 하고 살아라.” 어머니는 대학 학비를 대줄 형편이 못 되지만 이왕 공부할 거면 제대로 하라고 에둘러 말했다. 가난에서 벗어나 자립하는 지름길은 교육이라고 여겨 자녀 교육에 힘썼다. 가끔 경각심을 일깨워 줬으나 공부하라고 다그치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 자연 법칙과 사람의 존재 이유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커서 과학자가 되기로 했다. 서울대 천문학과에 입학했다. 진리를 찾았으나 손에 안 잡혀 한동안 방황했다. 학비를 스스로 마련하느라 학업에 전념할 수도 없었다. 졸업을 몇 달 앞뒀을 때 큰형이 전화로 진로 계획을 물었다. 스물두 살 많은 큰형은 병약했던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家長) 역할을 했다. 아직 못 정했다고 대답하자 취업하라고 했다. 1988년 삼성전관에 등 떠밀리듯 입사했다. 연구소에서 신기술 개발을 위한 기획을 맡았다. 외국 사이트에 접속해 주요 기술에 대한 정보를 보려고 하니 유료라는 안내문이 떴다. 가치 있는 데이터베이스(DB)는 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래는 정보와 지식이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1991년 정보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던 데이콤으로 직장을 옮겼다. PC통신 ‘천리안’ 관련 기획을 위해 해외 출장을 다녔다. 국내에서는 개념조차 생소한 인터넷이 선진국에서 빠르게 보급되고 있었다. 인터넷의 대중화가 머지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1995년 사내 게시판에 뜬 공고(公告)가 눈에 들어왔다. 소사장제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입하고 사업 아이디어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멀티미디어추진팀 대리이던 그는 동료 3명과 팀을 꾸렸다. 근무시간이 끝난 뒤 모여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인터넷에 문자 음성 영상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접목한 전자상거래를 사업안으로 정했다. 경영진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질의응답을 거쳐 아이디어로 채택됐다.

별도의 사무실이 주어져 사업화에 착수했다. 전자상거래에 필요한 제조업체, 카드회사, 물류업체 등을 찾아가 사업을 제안했다. 대부분 인터넷을 잘 몰라 사이트를 본 뒤 검토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5개월 만에 전자상거래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를 보여주며 재차 설득하자 한번 해보자는 업체가 나타났다.

1996년 온라인쇼핑몰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었다. 풀무원 코리아나화장품 도미노피자 등 10여 개 업체의 상품을 파는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데이콤이 사내 벤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원대 복귀냐, 사업 유지냐의 기로에서 도전을 택했다. 자식 같은 사업에 인생을 걸기로 한 것이다. 사측과 논의해 차후 갚기로 하고 지분 50%와 경영권을 확보했다. 34세 때인 1997년 데이콤에서 분사해 독립법인으로 출발했다. 이기형 인터파크 대표이사 회장(54) 이야기다. 인터파크는 인터넷 테마파크를 만들겠다는 뜻으로 직접 작명했다.

초기 운영자금이 부족해 여러 창업투자회사를 찾았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다른 회사의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는 등 각종 용역을 하며 버텼다. 어렵게 대한투자신탁에서 10억 원을 투자받아 한숨 돌렸다. 매출과 고객 수를 늘리려고 전문몰인 북파크(도서), 티켓파크, 투어파크(여행 예약)를 차례로 오픈했다.

국내에 없던 사업모델을 보고 대기업들이 온라인쇼핑몰에 속속 진출했다.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도서 ‘무료 배송’ 서비스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입했다. 성장동력을 찾으려고 경험을 살려 사내 벤처 육성에 나섰다. 이때 탄생한 G마켓은 2000년 직거래 장터인 오픈마켓을 처음으로 열었다. G마켓을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뒤 2009년 이베이에 매각했다.

새 수입원을 찾다 2011년 매물로 나온 아이마켓코리아를 인수했다. 삼성그룹에 소모성 자재를 공급하는 구매대행 업체였다. 이를 토대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소모품과 자재를 쉽고 싸게 살 수 있는 전문몰인 아이마켓을 오픈했다. 또 각종 공연을 기획, 제작하고 공연장 블루스퀘어를 짓는 등 문화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이 회장은 좌우명인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처럼 사내 벤처로 시작해 인터파크를 연매출 3조 원이 넘는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그는 인공지능과 축적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오늘도 뛰고 있다.

김상철 전문기자 sckim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