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수술중 환자 죽을수도”
《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을 목적으로 하는 상법 개정안이 이달 국회에서 중점 논의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재계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8일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이날과 9일 국회를 찾아 각 당에 상법 개정안과 관련한 경제계 의견을 전달한다. 지난해 5월 20대 국회가 출범한 뒤 대한상의가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의견을 공식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 대주주 권한 제한에 방점 둔 상법 개정안
현재 국회에 상정된 상법 개정안은 총 25개. 재계에서는 특히 김종인 노회찬 박영선 박용진 이종걸 채이배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들에 주목하고 있다. 해당 법안들은 세부 내용에서 다소 차이는 있지만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한 방향성은 일치한다. △감사위원 분리 선임 △집중투표제 의무화 △근로자 대표 등 추천자 사외이사 의무 선임 △다중대표소송 도입 △전자투표제 의무화 △자사주 처분규제 부활 등이 대표 개정안이다. 재계에서는 상법 개정안 중 일부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강력한 규제를 담고 있어 경영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현행 상법에서는 이사를 일괄적으로 선출한 뒤 선출된 이사 중 감사위원을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주주 의결권은 이사 선임 때는 제한이 없다. 반면 국회에 발의된 상법 개정안들은 일반 이사와 감사위원을 별도로 선출하도록 했다. 동시에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 대주주 의결권은 선임 단계부터 3%까지만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헤지펀드 등 투기자본이 감사위원 자리에 자기 사람을 밀어 넣을 여지가 커진다. 대주주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되기 때문에 일정 지분을 가진 해외 펀드끼리 규합하면 표 대결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어서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선진국 중 감사위원을 분리 선임하거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곳은 전무하다.
상법 개정안은 또 소액주주와 우리사주조합(또는 근로자 대표)이 추천하는 1인을 반드시 사외이사로 선출해야 한다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 경제계에서는 주식회사의 소액주주 및 근로자 대표에게 이런 권한까지 부여하면 오히려 주주 간 역차별이 생긴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주주의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 “지배구조 개선 필요하지만 신중해야”
재계는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은 점진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상법 개정안의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보다 신중한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예컨대 상법 개정안대로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국내 기업들은 소송 위험을 피하기 위해 모험적인 투자를 대폭 줄일 가능성이 점쳐진다. 모회사의 발행주식을 1%(상장사 0.01%) 이상 보유한 모회사 주주들까지도 자회사 이사의 경영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후진국에서는 규제를 옥상옥식으로 쌓아도 잘 작동되지 않는 반면 선진국에서는 시장참여 주체들의 자율규범에 따라 최선의 관행을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에서도 기관 투자가들이 기업을 감시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한 주요 이슈들이 하나씩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