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제균 논설실장
장벽을 쌓는 자, 공포를 쌓다
드라마를 볼수록 서구문명의 시원(始原)에 대한 메타포가 숨어 있음을 느낀다. 우선 장벽은 로마가 ‘미개한 야만인’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현재의 독일과 영국 내 제국 국경에 쌓았던 ‘게르마니아 방벽’과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연상케 한다. 야인은 당시에는 야만인이었으나 결국 로마에 동화돼 문명화된 게르만 앵글로색슨 골족(族) 등을 상징하는 듯하다. 공포의 상징인 좀비는 서구인들의 눈엔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인 데다 저항할 수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훈족, 몽골족을 생각나게 한다.
이방인에 대한 알 수 없는 공포와 적대는 서구의 기독교 백인우월주의와 결합돼 극우 포퓰리즘의 양상으로 표출된다.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상징은 성 준비에브의 ‘중세판’인 잔 다르크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 국경에 3000km의 장벽을 세우는 것도 모자라 헌법의 ‘정교(政敎) 분리’ 원칙을 파기해 기독교 신정(神政)국가로 만들려는 움직임마저 보인다.
현대의 제국인 미국의 황제 트럼프가 세우려는 물리적 장벽을 비롯해 정치·경제·통상·사회·종교 전방위 장벽에 벽 바깥의 세계가 소용돌이친다. 지도자와 국민이 단합해 견뎌내야 할 이 위기에 지지율 1위의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또 다른 ‘장벽’을 쌓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청산돼야 할 박정희 체제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강고하게 지배한다”며 ‘친일과 독재, 사이비 보수세력 청산이 혁명의 완성’이라고 했다. 그의 머릿속엔 아직 대한민국은 ‘친일·군부독재 세력이 강고하게 지배하는 사회’다. 말로는 ‘화쟁(和諍)과 화합’을 주장하지만, 민주당도 분열시킬 정도로 친노·친문의 벽을 높이 쌓았다. 집권해서도 이런 장벽을 쌓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재검토’ 같은 운동권식 반미친중(反美親中) 논리로 트럼프의 무지막지한 장벽 앞에 맞설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다.
내 편, 네 편 가르는 文의 장벽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