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탄핵소추에 ‘세월호’ 명시… 안전사고에 대통령 문책 선례로 국가 책임 무한정 확대는 문명 세계에선 보기 힘든 일 향후 유사한 재난 발생할 경우, 설사 ‘현장 쇼’ 연출하더라도 구조활동 방해는 절대 없어야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세월호 사건은 고질적 안전불감증이 빚은 어처구니없는 참사다. 침몰하기 전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만 내렸어도 대다수를 구조할 수 있었다. 선장이 저지른 치명적 실수를 되돌릴 시간과 방법이 없었던 것이 참사를 키운 본질이다.
민간 선박의 안전사고를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법적 책임 추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그 옳고 그름을 떠나 국가와 개인 간의 책임 경계를 재설정하고 국가 책임의 범위를 민간 영역으로 확대하는 결과를 낳는다. 개인이나 사기업의 잘못으로 발생한 사고라도 대응에 미흡한 점이 발견될 경우 국가를 대표해 대통령이 궁극적 책임을 져야 하고 개인과 민간 기업의 책임까지도 떠맡는 선례를 만든 것이다. 문명세계에서 국가 책임의 범위를 이토록 확대한 나라가 없고 이에 따른 재정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나라도 없다.
이러한 문명세계 기준이 우리나라에선 통용되기 어렵다. 가뭄이 들면 국왕이 기우제라도 지내던 왕조시대의 잔재가 국민 의식과 정서에 남아 있다. 대통령이 전복된 선박의 침몰을 막고 배 속에 갇힌 학생들을 구출하는 신통력을 발휘하진 못하더라도 만사 제쳐두고 현장으로 날아가 구조를 진두지휘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국가와 대통령의 책임 범위를 무한정 확대하는 것이 과연 재난관리와 국민의 생명권 보장에 도움이 될지는 다른 문제다. 대통령이 책임을 면하기 위해 직접 구조 활동 지휘에 나섰다면 박수를 받았을지는 몰라도 더 많은 인명을 잃었을 수도 있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빗발치는 상부의 상황보고 요구와 언론의 치열한 취재경쟁 때문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관할 해경은 정신을 차리기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현장에 출동하거나 중대본에 나왔다면 구조작업 지휘 책임자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을 테고 대통령 영접과 보고 준비에 정신을 빼앗겨 인명구조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해경이 사고 접수 30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민간 선박과 함께 급류 속에서 2시간 만에 172명을 구출하는 ‘기적’도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이 나섰을 때 구조활동에 초래했을 지장이나 인명 손실의 증가는 입증할 수가 없다는 데 있다. 국회나 언론도 대통령이 얼마나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상황관리에 나섰는지 집요하게 추궁하면서도, 그로 인한 폐해에는 무관심하다.
또한 청와대 등이 상급 부서로서 시시콜콜 간섭 못하게 해야 한다. 현장 상황과 구조활동을 가장 잘 아는 적임자를 찾아 지휘통제를 맡기되 중대본이나 청와대의 역할은 구조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산을 지원하는 데 그쳐야 한다. 청와대 국가안보실도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만 전담하고 재난관리 관여를 금지해야 한다. 재난 상황에서의 대통령은 국민안전처와 중대본을 관할하는 정무수석, 메시지 관리와 대국민 소통 책임을 맡은 홍보수석의 보좌를 받는 것이 순리다.
재난 발생 직후 우선적으로 필요한 또 다른 조치는 대(對)언론 창구를 대변인으로 일원화해서 다른 관리들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속보 경쟁이 오보 경쟁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고 정부의 신뢰성을 지키려면 미확인 사실을 흘리거나 브리핑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