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2013년 11월 장성택 제거를 앞두고 김정은이 핵심 측근들과 삼지연 김일성 동상을 찾은 모습. 군복을 입은 김원홍(오른쪽)이 뒤따르고 있다.
주성하 기자
평양의 비밀 장소에서 취조를 받은 김원홍 북한 국가보위상은 지금 이런 심정이 아닐까. 사실 그의 숙청은 오래전부터 예고된 일이다. 필자도 2년 전에 이 칼럼에서 “보위부 수장이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전망했다.
김원홍은 기적을 기다릴 것이다.
노동당 조직지도부는 김원홍을 처형해 그가 갖고 있을 자신들의 약점을 영원히 묻고 싶을 것이다. 살려두면 언젠가는 복수할지 모른다.
김정은에겐 김원홍의 숙청은 매우 골치 아픈 일일 것이다. 지금까지 말 한마디로 죽인 수많은 간부와는 달리 김원홍만큼 김정은 체제에 기여했던 인물도 없다. 그를 죽이면 김정은을 위해 다시 칼을 들겠다는 인물이 나오지 않을지 모른다. 당장 후임 보위상 임명부터 골치가 아프다. 심지어 “죽을 자리에 임명됐으니 내가 먼저 김정은을 제거해야겠다”고 역심을 품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보위 기관의 수장은 김씨 가문의 저승사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예외 없이 비극적 운명을 맞았다. 또 수장이 숙청될 때 다수의 부하도 순장조처럼 함께 처형됐고 가족들은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갔다.
1973년 국가정치보위부 출범 이후 초대 보위부장이었던 김병하는 토사구팽의 상징 같은 인물이다. 그는 1970년대 김정일의 후계 구도에 방해되는 인물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해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북한의 모든 권력을 움켜쥔 뒤 김정일은 김병하의 무소불위 권력이 두려워졌다. 김병하는 당의 조사를 받던 중 1980년 자살했다고 알려졌다. 그의 심복들도 대거 처형되면서 기세등등하던 보위부는 쑥대밭이 됐다. 김정일은 “김병하는 애매한 군중을 마구 처형하고 잡아가 당과 대중을 이탈시킨 반당 반혁명 종파”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보위부에 잡혀간 사람이 석방된 일은 없다.
그랬던 보위부는 2000년대 말 류경 부부장이 김정일의 눈에 들면서 서서히 존재감을 회복했다. 남북회담을 통해 우리에게도 알려졌던 류경은 해외 반탐(방첩) 분야를 담당하면서 이중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던 머리가 비상한 인물이었다. 김정일은 보위부 간부 중에서 류경만을 수시로 독대하며 신임했다. 이러는 바람에 류경은 김창섭 정치국장 등 보위부 간부들과 장성택의 행정부, 이제강의 조직지도부에서 동시에 미움을 샀다.
김정일은 죽음이 닥쳐 온다는 것을 예감하자 아들에게 권력뿐 아니라 돈도 물려주고 싶었다.
“무조건 100억 달러를 유치해 오라.”
김정일은 이런 특명을 주어 2010년 12월 류경을 남쪽에 비밀 특사로 파견했다. 비슷한 시기 가신이나 마찬가지인 이수용(가명 이철) 합영투자위원회 위원장을 중국에 보냈다.
류경이 가져왔던 제안은 지금까지 비밀이지만 정상회담과 경제협력을 미끼로 대규모 차관을 얻으려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2010년 류경이 서울에 와서 남북 정상회담을 합의했지만, 북한의 요구가 지나쳐 무산됐다”고 밝혔다.
류경은 평양에 돌아가자마자 반탐 계열의 심복 10여 명과 함께 처형됐다. 내막을 깊이 알고 있는 북한 전직 고위 간부는 “서울에서 고급 여성 코트 등을 선물로 받았는데 이를 보고하지 않았던 것도 문제가 됐다”고 회상했다. 류경이 빠뜨린 선물 목록은 함께 서울에 동행했던 여성 수행원이 보고하면서 드러났다. 고위급 간부들에게 전달된 류경의 처형 사유는 “파벌을 형성하고 망탕짓을 했다”는 것이다. 해외 반탐 수장으로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 나가 부화방탕하게 놀았다는 것. 그러나 이것 역시 표면적 이유일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김정일은 어린 김정은에게 물려주기엔 류경이 지나치게 야심만만해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김원홍은 이런 보위부 비극의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정은은 김정일과는 다를지 모를 것이란 한 가닥 기대를 걸어보진 않았을까. 하지만 세습 독재 체제의 속성은 3대가 아니라 10대가 가도 변하지 않는다.
“세력이 커진 자는 반드시 죽는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