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앤 콘웨이(50).
편모 슬하에서 자라 블루베리 농장에서 일하던 가난한 소녀는 자신의 여론조사회사를 차렸다. 부유한 변호사 남편과 결혼했을 뿐 아니라 트럼프 선거 캠페인을 진두지휘하며 미 최초의 여성 킹메이커가 됐다. ‘아메리칸 드림’의 산 증인이다.
대안적 진실, 탈(脫) 진실(Post truth), 신어(新語·Newspeak), 사실의 반감기(The Half-Life of Facts) 등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생경한 단어들을 미국 사회에 유행시킨 ‘트럼프의 입’ 콘웨이는 누구일까.
▲ 1월 22일 NBC에 출연해 ‘대안적 사실’을 주장하는 콘웨이
○블루베리 농장의 고학생
콘웨이는 1967년 미국 뉴저지 주에서 아일랜드계 부친과 이탈리아계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 당시 성은 피츠패트릭. 부모는 3살 때 이혼했고 그는 어머니, 외할머니, 결혼하지 않은 두 명의 이모와 함께 어렵게 살았다.
고교시절 콘웨이
그는 고교 졸업할 때까지 8년간 매년 여름을 뉴저지 주 해먼튼의 블루베리 농장에서 일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16세 때는 한국의 ‘사과 아가씨’와 유사한 ‘미스 뉴저지 블루베리’로도 뽑혔다. 그는 “내가 인생과 사업에 관해서 알아야 할 모든 것은 블루베리 농장에서 배웠다. 나는 누구보다 빨리 일하는 훌륭한 근로자였다. 그래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콘웨이는 워싱턴 DC 트리니티 칼리지, 조지워싱턴대 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92년 여론조사업계에 입문했다. 공화당 성향의 여론조사회사 위슬린 그룹에 입사해 기본기를 배웠다. 28세 때인 1995년 자신의 회사 ‘더 폴링 컴퍼니(The Polling Company)’를 설립했다. 잘 나가는 기업법 전문 변호사 조지 콘웨이 3세와 결혼해 네 자녀를 두었다.
젊은 시절 콘웨이
○젊은 여성 공략하는 여론조사회사
콘웨이의 회사는 젊은 여성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 능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 화장품 회사 바셀린 등 대기업 고객을 유치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는 회사 홍보를 위해 방송 활동도 열심히 했다. 보수 성향 언론인 앤 쿨터, 로라 잉그램, 바바라 올슨 등 또래 여성들과 함께 지역 케이블 방송을 누볐다.
20대의 콘웨이는 누구나 인정할 만한 금발 미인에 입담도 셌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르윈스키 스캔들로 곤욕을 치르던 시기에는 신랄하게 클린턴을 비판했다.
▲ 1996년 빌 클린턴(민주) vs 밥 돌(공화) 간 대선을 논평하는 20대의 콘웨이
이름값이 높아지자 공화당 의원들이 콘웨이 앞에 줄을 섰다. 보수 성향 공화당 의원들은 대체로 2030 여성들에게 인기가 낮았다. 콘웨이는 댄 퀘일 전 부통령, 프레드 톰슨 전 상원의원 등 거물 정치인들의 여론조사를 대행해 여성 공략법을 조언했고 회사는 더 번창했다. 마이크 펜스 현 부통령,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등도 그의 고객이었다.
2004년 미 대선 당시 그의 회사는 워싱턴포스트(WP)로부터 ‘가장 정확한 선거예측 회사’로 뽑혔다. 케이블 방송에만 주로 출연하던 콘웨이 역시 선거 때마다 미 3대 공중파(ABC, CBS, NBC)에 단골로 출연하는 유명 인사가 됐다.
콘웨이 가족
○트럼프와의 만남
콘웨이는 2016년 미 대선에서 처음부터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초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을 지지했다. 트럼프에 대해서는 “너무 극단적이고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2016년 7월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했다. 콘웨이 역시 트럼프에게 여성 공략법을 조언할 고문으로 영입됐다. 그가 트럼프 캠프에 합류한 지 한 달 만에 당시 선거 본부장이던 베테랑 전략가 폴 매너포트가 해임됐다. 우크라이나의 친(親)러시아 정당과 결탁해 약 140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갑작스레 선대본부장이 된 콘웨이는 두 달 반 동안 트럼프의 충동적이고 극단적인 발언을 방어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힐러리 클린턴의 e메일 스캔들, 클린턴재단 의혹 등을 공격하는 최전선에도 섰다. 그의 노고를 인정한 트럼프는 2016년 12월 22일 그를 백악관 고문으로 임명했다. 남편 조지 콘웨이 역시 한때 법무차관 물망에 올랐다.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
오바마-트럼프 취임식장 비교
1월 20일 로이터는 2009년 오바마 취임식과 이날 트럼프 취임식 인파를 비교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누가 봐도 오바마 취임식장에는 인파가 가득했지만 트럼프 쪽은 듬성듬성했다. 미 언론들이 잇따라 ‘역대 최저 지지율로 출범한 인기 없는 정권’이란 기사를 내자 트럼프는 격분했다.
하루 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취임식 당일 42만 명이 워싱턴 지하철을 이용했다. 오바마 때 31만7000명보다 더 많았다”며 뜬금없고 군색하기 그지없는 해명을 내놨다. 언론 비판은 더 커졌다.
1월 22일 콘웨이가 NBC 유명 시사 프로그램 ‘밋 더 프레스(Meet the Press)’에 출연했다. 진행자가 “백악관 대변인이 첫 브리핑에서부터 거짓말을 한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스파이서가 주장한 건 거짓이 아니라 대안적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대안(alternative)과 사실(fact)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다. 미 전역이 난리가 났다. ‘#대안적사실(AlternativeFacts)’이라는 해시태그는 전 세계로 퍼졌고 작가 앤드리아 찰루파는 트위터에 튀김 사진을 올린 후 ‘이게 바로 대안적 샐러드’라고 조롱했다.
콘웨이는 2월 2일에 설화에 휩싸였다. MSNBC에 출연해 트럼프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을 두둔하며 “2명의 이라크 출신 난민이 2011년 켄터키 주 볼링그린에서 테러를 일으켰다. 하지만 언론이 보도하지 않아 대부분이 모른다”고 주장했다. 미 언론의 취재 결과 이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콘웨이, 트럼프의 ‘칼 로브’ 될까?
책사. 중국 춘추전국시대 각국 제후에게 집권 전략을 제시한 이들이다. 제갈량이 없는 유비, 한명회가 없는 세조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대선은 킹(King)을 뽑는 행위지만 진정한 싸움은 ‘킹’이 아니라 그들이 보유한 책사, 즉 ‘킹메이커’ 간에 이뤄진다.
2004년 11월 재선에 성공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선거 캠페인을 총괄한 칼 로브를 이 렇게 치하했다. “그는 우리의 설계자(the architect)다.” 무명의 아칸소 주지사 빌 클린턴이 대통령 출마를 결심하고 처음 만난 사람도 약관 29세의 선거 전략가 조지 스테파노폴루스였다. 칼 로브(부시), 데이비드 액셀로드(오바마), 조지 스테파노폴루스(클린턴) 등 주군을 킹으로 만든 책사들은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다. 언론은 그들을 ‘사실상의 대통령’이라 불렀다.
하지만 영원한 권력은 없다. 부시 정권 내내 2인자로 군림했던 칼 로브는 시사주간지 타임에 중앙정보부(CIA) 비밀요원 존재를 누설(리크·leak)해 감옥에 갈 위기에 몰렸다. 부시가 가까스로 그의 기소를 막아 감옥행을 면했지만 그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과연 콘웨이는 어떤 길을 걸을까. 트럼프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바람막이 노릇을 하며 대통령의 눈과 귀를 독점하는 위치에 올랐지만 그의 행보가 순탄할 것 같지는 않다. ‘우리 편’의 감정과 주관적 신념에만 호소하고 사실을 외면해 정권의 신뢰성을 떨어트리는 핵심 참모는 ‘주군’에게도 결국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