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속옷 시장 개척… 한국무역 1세대
고인은 1925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압제가 심할 때였다. 고인은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만주로 갔다. 스무 살 무렵부터 전쟁을 피해 만주로 온 사람들에게 과자를 팔았고 광복 후 고국에 돌아와 무역에 눈을 떴다. 유창한 중국어와 일본어가 무기였다. 29세이던 1954년 무역회사 남영산업주식회사를 차렸다. 사업상 일본 출장을 간 길에 나일론 원단직조기계를 만나면서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나일론으로 여성 속옷을 만들어 보자.’
1950년대 여성들은 전쟁 후 급속히 서구 스타일에 젖어들었지만 속옷은 여전히 광목으로 만든 전통적인 속옷 수준에 머물렀다고 한다. 고인은 1957년 ㈜남영비비안을 설립해 당시 생소했던 거들, 브래지어 등 ‘란제리’ 시장을 열었다. 한국 최초의 스타킹 ‘무궁화’(1958년), 최초의 ‘볼륨업브라’(1995년)가 모두 그의 작품이다.
고인은 평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교육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확고한 신념 아래 1976년에 재단법인 연암(然菴)장학회를 설립했다. 현재까지 6000여 명의 학생에게 약 48억 원의 장학금을 수여했다.
고인은 부인 김영순 여사와의 사이에 아들 석우 씨(㈜남영비비안 회장)와 딸 명화 진화 경화 지윤 지희 지현 승희 씨 등 1남 7녀를 뒀다. 사위로 제임스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1일 오전 8시 30분. 02-3410-6917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