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 일자리를!]美-佛-獨-英, 진영논리 넘은 경제정책
11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런 게 바로 우리가 원하는 ‘좋은 일자리’”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정부가 각종 규제와 세금 부담을 덜어줄 것을 알기에 인텔이 이런 일자리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국내 4대 그룹 관계자는 “힘을 앞세운 ‘일자리 뜯어내기’란 비판에도 어쨌든 트럼프는 자신이 약속한 ‘일자리 창출’ 어젠다를 지켜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인들보다 낫다”고 말했다.
○ 선진국 진보진영의 교훈
일자리를 늘리려면 기업이 투자하고 새로운 사업을 벌일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게 기본 원리다. 지금 한국 정치권은 거꾸로 가고 있다. 규제는 강화하고 사회 안전망에 투입해야 할 국민 세금으로 공무원 일자리를 늘리자는 구호를 줄줄이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선진국 진보 진영의 성공적인 경제 어젠다를 한국 정치권이 복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만 있다면 때론 보수진영의 경제논리까지도 수용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정책으로 성장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1993년 집권한 빌 클린턴 민주당 정부는 적극적인 시장 개입과 공공투자 확대로 재임 말년인 2000년 미국 역사상 최고 수준의 재정흑자를 달성했다. 행정비 지출은 강력히 억제하는 한편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렸다. 첨단기술 개발 및 인력 자원에 대한 기업 투자에는 인센티브를 대거 도입했다. 집권 첫해인 1993년 2.7%이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00년 4.1%까지 올랐다. 같은 기간 실업률은 6.90%에서 3.99%로 절반 수준으로 낮춰졌다.
2012년 11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정부가 도입한 ‘갈루아 보고서’ 역시 요점은 기업조세 부담 경감을 통한 투자 활성화 및 일자리 늘리기였다. 재무관료 출신으로 기업경쟁력 전문가로 꼽히던 루이 갈루아 전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 회장의 이름에서 따온 보고서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부(富)를 만들어 내는 것은 기업인인데도 기업인에 대한 적대감이 너무 컸다. 이래서는 프랑스가 일어설 수 없다는 게 보고서의 핵심”이라고 했다.
1997년 입각한 영국 신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정부는 전임 정부의 창조산업 정책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계승했다. 산업 및 도시 경쟁력을 강화해 일자리를 늘리려는 ‘성장 어젠다’라는 점을 높게 평가해서다. 1998년 7.5%이던 영국의 실업률은 2006년 5.3%로 줄었다.
○ 거꾸로 가는 한국 대선 주자들
전문가들은 지금 한국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 방안이 핵심에서 벗어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인들이 현장에 바탕을 둔 경제정책이 아니라 프로파간다(선동)적인 슬로건에만 익숙해져 있다”며 “이대로라면 경제성장률이 2%대도 유지하지 못하고 1% 이하로 추락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고 우려했다.
대선 주자들이 미래 청사진으로 일제히 앞세우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도 산업계는 고민 없이 좋은 단어만 나열하는 것 아니냐며 회의적이다. 4차 산업혁명은 단순 자동화를 넘어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을 통해 공장 및 제품이 지능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지만 산업 자체만 놓고 보면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OECD 21개 회원국을 봤을 때 평균적으로 전체 일자리의 9%가 자동화로 대체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재계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으로 줄어드는 일자리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급한 시점인데,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떠드는 정치인들은 도저히 못 믿겠다”고 말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전부터 업계에서 요구해온 서비스 산업 규제 완화 등 관련 법안은 수년째 국회에 묶여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부터 밝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샘물 evey@donga.com·김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