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박용 기자가 만난 사람]임종룡 금융위원장 “한진해운, 경쟁력 잃어 살릴 수 없었다… ‘최순실 연루설’ 터무니없어”

입력 | 2017-02-13 03:00:00

금융위원장 임종룡




임종룡 금융위원장에게 “부총리 임명이 무산돼 조직 분위기가 어수선할까 걱정”이라고 했더니 “직원들이 부총리로 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평소처럼 열심히 일하더라”며 웃었다. 이어 “언제까지 이 자리에 있을지 모르지만 위험관리, 금융개혁 완수를 위해 입법과 성과주의 문화 정착 마무리, 서민취약계층 지원책을 마련하는 데 열정을 쏟겠다”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박용 기자

《 지난해 11월 2일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내정된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기자간담회를 열고 “성장을 위한 부동산 투기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청와대가 임명한 지 1시간 반 뒤였다. 이튿날 분양권 전매제한과 청약요건 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11·3 대책’이 발표됐다. 임 위원장은 정치권의 외면 속에 부총리 타이틀을 달진 못했다. 하지만 부동산 과열과 가계부채 급등세를 잡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음 달로 취임 2주년을 맞는 임 위원장을 최근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났다. 》
 
‘금융당국을 시장을 간섭하는 코치가 아닌 관리하는 심판으로 만들겠다’며 취임한 임 위원장은 “35년 공직생활 중 지난 2년이 가장 길었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가계부채가 1300조 원을 넘었는데….

“가계부채가 지난해에 전년보다 11% 정도 늘어 1330조 원으로 추산된다. 금리가 낮았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규제 완화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진했던 부동산 시장의 정상화가 겹쳐 가계부채가 늘었다.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질 것이다. 금리가 오르고 주택분양 물량도 시장 기능에 의해 서서히 조정될 것이다. 모든 금융권에 가계부채 관리체계도 완비했다.”

금융당국이 대출 규제를 강화하자 지난달 국내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폭(585억 원)은 2014년 1월(―2조2000억 원) 이후 3년 만에 가장 낮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DTI 한도를 30∼50%로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금융회사의 건전성 관리 장치인 LTV와 DTI로 부동산 경기를 언제까지 관리할 건가. 냉탕 온탕을 왔다 갔다 하면 시장 주체도 우왕좌왕한다. 경기도 죽었다 살았다 한다. 이런 식으로 경제를 운영할 수 없다. 시장에 자꾸 충격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정부가 가계부채의 총량을 관리하는 건 시장경제에 맞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를 바꿔야 한다.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빌리고 처음부터 빚을 갚는 관행이 정착돼야 한다. 20년 만기 대출을 받고 매년 5%씩 원리금을 갚으면 자연스럽게 가계부채 총량이 정리될 것이다. 고정금리로 대출을 받아 리스크를 차주가 아닌 금융회사가 지도록 해야 한다.”

금융위는 올해 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 비율을 50%에서 55%로, 고정금리 대출 비율을 42.5%에서 45%로 높이기로 했다. 장래 소득 증가 등이 반영된 ‘신DTI’를 마련하고 모든 대출의 원리금을 살펴 차주의 상환 능력을 판단하는 총부채상환비율(DSR) 제도도 2019년까지 단계적으로 도입한다.

―대출을 조이면 부동산, 건설 경기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주택시장은 약간의 공급 과잉이 있어 이전의 활황세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건설경기가 급격히 위축되진 않을 것이다. 획일적인 정책보다 맞춤형, 지역별로 대응해야 한다. 과열지구는 지난해 ‘11·3 대책’과 같은 것을 내놓고, 미분양 급매물 주택이 나오는 지역은 이를 매입해 임대주택을 늘리는 식의 다각화한 대책이 필요하다.”

“중도금 대출 어려운 건 단기적 현상”

―주택시장에선 벌써 중도금 대출을 받기 어렵다고 한다.

“일부 시장에서 그런 사례가 있다는 건 사실이다. 은행들이 해당 지역 건설경기 상황을 감안해 리스크 관리에 나선 것으로 봐야 한다. 리스크가 커지면 금리가 오르는 게 당연하며 부동산 시장이 연착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단기적인 일이다. 전체 주택시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보진 않는다.”

―한진해운이 곧 청산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 논리로 지나치게 밀어붙인 것 아닌가.


“한진이 세계 7위의 해운선사라고 했지만 선박 155척 중 95척이 시장가보다 80% 비싼 사용료를 내는 용선(傭船·빌린 배)이었다. 직접 보유한 배는 60척에 불과했고 2조5000억 원의 빚을 안고 있었다. 해운업의 불황이 언제 끝날지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채무조정의 진척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막대한 자금 지원으로 외형을 유지하는 게 구조조정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해운업은 국가 전략산업이지 않은가.

“국적 선사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수출입 물량 수송비율은 11%에 불과했다. 한진해운은 전략물자를 실어 나르는 벌크선도 쪼개 팔아 버렸다. 원유 공급의 2% 정도만 담당하고 있었을 뿐이다. 감당할 수 없는 재무구조를 가진 경쟁력 없는 선사를 해운산업이니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한진해운을 ‘배드컴퍼니’와 ‘굿컴퍼니’로 나눠 살렸어야 했다고 지적했는데….


“과거처럼 기업 우량자산을 떼어내 굿컴퍼니를 만들고 나쁜 자산을 배드컴퍼니로 넘겨 정리하는 방식을 한진해운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 방식은 채권단의 합의가 있어야 가능한데, 한진해운은 합의할 수 있는 협약 채권이 30%에 불과했다. 굿컴퍼니를 만들 우량자산도 별로 없었다.”

―용선 위주의 산업구조를 만들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2005, 2006년 해운업이 활황일 때 비싼 값에 용선을 지나치게 늘렸고, 시장성 부채로 은행 부채를 갚았다. 경영적 판단의 실패였다. 해운 경기가 바닥이 됐을 때 은행이 어떻게 해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과거 정부가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강요해 그렇게 됐다고 하는데 전혀 맞지 않는 얘기다. 당시 항공 해운은 예외로 했다.”

“대우조선 자율협약, 검토 안해”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후 물류대란은 어떻게 된 건가.

“물류대란을 충분히 준비하거나 대응하지 못했다. 법정관리로 가게 되면 예상할 수 있었던 문제인데, 살아있는 기업에 망하는 걸 전제로 같이 대비하자고 협조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해운업 구조조정의 중요한 교훈이다.”

―일각에선 ‘최순실 게이트’와 연관된 한진그룹에 대한 보복성 구조조정이란 의혹도 제기한다.

“어떤 의혹도 있을 수 없다고 확고하게 말할 수 있다. 그동안 스스로 채무를 조정하고 소유주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을 공개하고 일관되게 적용했다. 현대상선도 이 원칙에 따라 채무조정에 성공했다. 하지만 한진해운은 채무조정이나 기업주의 자금 조달 노력이 부족했다. 이 원칙을 깨면서 지원할 순 없었다.”

―조선업 구조조정도 진행되고 있다.


“대형 조선 3사는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 경제를 떠받치고 많은 사람을 고용한다. 세계 1위 기술과 위상을 보전해야 한다. 다행히 환경규제 강화, 세계 시장의 선박 수령 등을 감안하면 조선업 불황의 사이클이 2018년 회복세에 들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형 3사가 자구 노력을 통해 유동성을 조달하고 불황을 견디면서 가자는 게 구조조정의 방향이다.”

―외환위기 직후 기업 빅딜에 관여했다. 조선업 빅딜도 시도해볼 만한가.

“당시 기업부실과 금융부실이 확산돼 국가경제가 백척간두에 서 있었다. 빅딜에 대해 어느 정도 강제적이고 전면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 지금은 개별 기업의 부실이 문제다. 정부가 과거처럼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실현 가능하지도 않다.”

―대우조선이 자금난으로 조건부 자율협약에 들어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현재 검토하고 있지 않다.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우조선과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앞으로 선박을 잘 건조해 내보내고 신규 수주도 따내야 한다.”

―우리은행이 16년 만에 민영화에 성공했다.

“우리은행장 인선 과정에서 과점주주들이 협의해 은행장을 뽑는 새로운 모델을 시도했다. 민영화의 성공은 정부가 손을 떼는 게 아니라 과점주주라는 집단지성을 활용해 견제와 균형, 합의에 의해 경영하는 지배구조를 성공시키는 것이다. 이 모델이 성공하면 다른 곳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은 지분 20% 매각은 공적자금 회수만을 목표로 추진할 것이다.”

“대출 연체해도 곧장 집 뺏기지 않게”

―금리가 오르면 저소득층의 대출 부실이 커질 수 있다.

“연체가 우려되면 은행에 가서 미리 채무조정을 제안하는 사전적 채무조정 협의를 활성화해야 한다. 집 하나 달랑 있는 사람이 주택담보대출 연체했다고 3개월 만에 집 뺏기고 거리에 나앉게 할 순 없다. 은행이 집을 경매에 넘겨 빚을 갚을 것인지, 경매를 늦춰주되 빚을 상환하는 채무조정을 신청할 것인지 차주와 의무적으로 상담하게 할 것이다.”

―자영업자 대출 부실에 대한 걱정도 많다.

“올해 가계부채의 핵심적인 대책이 자영업자(개인사업자)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이 0.4%, 자산 대비 부채는 20% 정도여서 심각한 대규모 부실이 발생할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최근 경제 여건이 악화되고,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자영업자 대출이 빠르게 늘어 가계부채의 가장 큰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3월까지 500조 원 안팎(지난해 9월 현재)인 자영업자 대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소득이나 지역별로 관리할 것이다.”

―차기 정부에서 기재부와 금융위 조직이 개편될 수 있다는 전망이 있는데….

“우리가 안 해본 형태의 금융 행정조직이 있나. 또 흔드는 건 현명하지 않다. 5년마다 조직을 개편하면 공직사회가 치러야 할 대가도 굉장히 크다. 경제 상황이 그런 일에 매달릴 만큼 한가하지 않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