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 출판평론가
영국 국왕 제임스 1세 주관하에 편찬한 킹 제임스 성경(1611년)은 오랜 세월 표준 성경으로 널리 읽혔다. 이 성경의 1631년 인쇄본에 전설적인 오탈자가 있다. 십계명의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에서 ‘not’이 빠져 ‘간음하라’는 문장이 되어버렸다. ‘죄를 더 저지르지 말라’는 예수님 말씀이 오자 탓에 ‘죄를 더 저질러라’로 바뀌기도 했다. 식자공은 벌금형을 받았고 책은 회수하여 불태웠지만 오늘날까지 11부가 남아 있다.
서책 인쇄가 대단히 중요한 국가사업이었던 조선에서는 오자 실수를 한 관리를 엄하게 처벌했다. 중종 때 만든 법령집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에 따르면 책 하나에 오자가 하나라도 있으면 담당 관리를 장(杖) 30대 형에 처했다. 책 만드는 장인(匠人)은 오자는 물론이고 글자가 지나치게 진하거나 흐려도 장 30대 형에 처했다. 만일 다섯 글자 이상이면 장형에 더하여 직위해제나 감봉 처분까지 받았다.
요즘엔 책에서 오탈자를 찾으면 출판사에 알리는 독자가 늘었다. ‘책에 누락되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페이지, 줄 수, 내용을 알려주세요. 독자 여러분의 제보가 더 나은 책을 만드는 밑거름이 됩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오탈자 제보’란을 두고 이렇게 안내하는 출판사도 있다. 책을 만들 때에도, 나온 다음에도 정성을 다하는 출판사와 눈 밝고 적극적인 독자가 더 나은 책을 함께 만든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