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하네요.”
황재성 경제부장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국가적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범국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로 인한 국정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이를 주도해야 할 공직자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무능과 무기력에다 복지부동(伏地不動)을 넘어서 낙지처럼 달라붙어 꼼짝도 하지 않는 ‘낙지부동’을 하고 있어서다.
‘낙지부동’ 행태는 끔찍한 수준이다. 매년 수조 원을 쏟아부은 일자리 창출 정책은 실패했고, 청년층 실업률은 지난해 16년 만에 미국보다 높아지는 등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하지만 관련 부처 관계자들은 “현재 새로운 정책을 내놓을 상황이 아니다. 그저 기존에 했던 정책들을 잘 마무리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말만 내뱉는다. 최순실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청와대에 근무 중인 부처 파견 공무원들은 “‘개점휴업’ 중이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공직사회가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분야가 있기는 하다. 야당을 중심으로 제기된 정부 조직 개편 움직임에 나타난 ‘밥그릇 챙기기’다. 경제 컨트롤타워를 맡고 있는 기재부가 대표적이다. 재정과 공공기관을 담당하는 예산처 라인과 거시경제 정책을 담당하는 재경부 라인으로 쪼개질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치열한 영역 다툼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갈등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져 엘리베이터에서 서로 인사도 안 하는 수준으로까지 악화됐다고 한다.
한국 경제가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놓였다는 경고음이 울린 지는 이미 오래다. 최근에는 그 강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2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과거 유럽 재정위기 수준으로 높아져 있으며 이대로 가면 한국 경제가 ‘불확실성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불확실성의 함정이란 경기가 나쁜 상황에서 불확실성이 확대돼 가계 및 기업의 소비와 투자가 지연되고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공직사회가 무능과 무기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낙지부동과 밥그릇 챙기기만 계속한다면 이 같은 우울한 전망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외환위기 때만큼 힘들다”며 내뱉은 한 씨의 깊은 한숨이 죽비 소리처럼 귓전을 맴돈다.
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