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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대통령 탄핵심판 변호인단 법리도 품격도 없다

입력 | 2017-02-15 00:00:00


선진국에 비해 길지 않은 헌정사에 2004년에 이어 10년여 만에 다시 대통령 탄핵심판을 맞은 것은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그럼에도 대통령 탄핵심판은 그 희소성과 중대성으로 우리 헌정사는 물론 사법사(司法史)에 길이 기록될 재판이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재판에 응하는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이 치열한 법리 다툼은커녕 가볍고 수준 미달의 행태를 보여 국민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어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공개변론에서 대통령 측 서석구 변호사는 변론 시작 전에 태극기를 펼쳐 보였다가 헌재 경위의 제지를 받았다. 서 변호사는 처음 대통령 변호를 시작할 때부터 ‘촛불 민심은 민심이 아니다’라며 박 대통령을 박해 당한 소크라테스와 예수에 비유하는 황당한 인식을 드러냈다. 매번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는 그는 최근 집회에선 “이 집회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보고 있다”고 한 뒤 갑자기 영어로 연설하기도 했다. 변호사가 대통령을 법리로 방어하는 게 아니라 장외 여론전에 기대 지지층 결집에 골몰하고 있다.

대리인단 이중환 변호사는 지난번 변론에서 최순실-고영태 불륜설을 제기하며 대통령이 고영태에게 억울하게 당했다는 인식을 드러내 재판부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불륜설은 사실 여부도 확실하지 않을뿐더러 사건의 본질과는 무관하다. 어제 국회 측 요청으로 헌재에서 공개된 고영태 녹음파일에는 “VIP(대통령)는 이 사람(최순실)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발언이 들어 있었다. 대통령에게 불리한 녹음을 증거로 신청하겠다고 먼저 밝힌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대통령 측이었다. 녹음파일의 유·불리도 따지지 않고 파일이 증거로 채택되면 검증기일이 늘어나 재판이 연장될 것이라는 점만 고려하다가 오히려 대통령을 불리하게 만들었다. 일반 사건이라면 의뢰인이 변호인을 해임할 사유다.

후대에 남을 탄핵심판은 국회 측과 대통령 측 대리인단 모두 최고의 법리와 풍부한 판례로 재판관들을 설득해야 한다. 어제 첫 변론에 나선 대리인단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은 “권력 주변에 기생하며 호가호위하는 무리가 있었고 그들을 사전에 제거하지 못한 대통령의 잘못은 따끔히 나무라야 한다”면서도 “그런 과오가 헌법상 임기가 보장되는 대통령직에서 파면할 정도의 잘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연한 변론이 오히려 합리적으로 들릴 정도였다. 돌발행동이나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저급한 폭로로 되지도 않을 지연작전이나 펴는 것은 옳지 않다. 대통령 대리인의 변호는 격(格)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