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사정 묻자 “잘 모르고 알려고 안해” 장성택 얘기 꺼내자 “정말 할말 없어” “건강? 아직 쓸만해 보이지 않냐”… 사진 촬영 요청에 “절대 안돼”
“김정남 선생님이시죠? 동아일보 기자입니다.”
2014년 9월 29일 오전 8시 반,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 근처에 있는 르메르디앙 에투알 호텔 로비. 당일 오전 4시 반부터 4시간 동안 호텔 식당 앞에서 소위 말하는 ‘뻗치기’(현장 지키기)를 한 기자가 이렇게 물었을 때 동행했던 여성은 시선을 피하며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김정남(당시 43세·사진)은 달랐다.
“여기(호텔)에 한국 사람들이 좀 보여서 누군가가 미디어(언론)에 이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은 했는데… 결국 왔군요.”
국내외 언론사 기자 가운데 마지막으로 기록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고(故) 김정남과의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김정남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라는 표정과 말투였다. 약간의 두려움도 느껴졌다. 자리를 피하려는 김정남에게 건강을 묻자 “아직 쓸 만해 보이지 않냐”며 웃으면서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비교적 담담하게 대화를 이어가던 김정남은 북한에서 후견인 역할을 했던 고모부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2013년 12월 숙청됨) 이야기를 꺼내자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고개를 돌리면서 푹 숙였고, 아랫입술도 살짝 깨물었다. 그리고 단호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할 말 없습니다. 이제 그만 좀 하시죠.”
호텔 직원들에게는 유창한 영어로 “이 사람이 나를 사진 찍었다. 이건 사생활 침해니 경찰을 부르라”고 외쳤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