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법정서 치열한 법리다툼 예고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지난달 26일 확보한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의 수첩 39권을 ‘증거의 보고(寶庫)’로 평가하고 있다. 안 전 수석이 박근혜 대통령의 각종 발언과 지시 사항 등을 ‘사초(史草)’에 비견될 만큼 꼼꼼하게 기록했기 때문이다. 특검은 수첩 내용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국정 농단 사건의 빠진 퍼즐을 맞추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안 전 수석 측이 특검의 수첩 확보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면서 향후 법정에서 수첩 내용의 증거 능력을 둘러싸고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상된다. 특검은 이 수첩 내용을 근거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 사전구속영장을 재청구했기 때문에 수첩의 증거 능력이 이 부회장 영장실질심사의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 “靑 행정관이 무단 제출…증거 채택 위법”
특검 관계자는 새로 확보한 수첩 39권에 대해 “김 행정관이 청와대 경내에서 안 전 수석의 수첩을 찾았으며, 변호인 입회하에 ‘안 전 수석과 상관없이’ 특검에 임의 제출했다”고 밝혔다. 또 특검은 안 전 수석이 증거 인멸을 위해 폐기하라고 준 수첩들을 김 행정관이 보관하다 자발적으로 특검에 제출했기 때문에 수첩들을 증거로 채택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자세다.
반면 안 전 수석 측은 “김 행정관에게 수첩을 준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 전 수석은 청와대 근무 당시 김 행정관에게 종종 수첩을 정리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보관하거나 폐기하라고 지시하며 맡긴 적은 없다는 것이다.
안 전 수석의 측근은 “수첩은 수사에 대비해 안 전 수석이 근무했던 경제수석실이나 정책조정수석실이 아닌 제3의 장소에 보관했다”며 “김 행정관이 이를 무단으로 가져가 특검에 낸 것은 위법”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김 행정관이 수첩들을 ‘훔친’ 것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법원에서 김 행정관이 수첩을 훔친 것으로 판단할 경우 증거 채택이 안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지방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안 전 수석이 수첩을 특검에 제출하는 데 동의하는 게 가장 무난한 모양새”라면서도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기 때문에 증거로 채택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수첩에는 박 대통령이 지난해 2월 이 부회장을 독대한 뒤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등과 관련해 언급한 내용이 적혀 있는데, 특검은 이를 삼성의 박 대통령에 대한 부정한 청탁을 입증하는 정황으로 보고 있다. 최순실 씨(61·구속 기소) 모녀를 지원한 대가로 박 대통령에게 사업 현안을 풀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 영장실질심사를 맡은 한정석 영장전담판사가 입수 경위를 문제 삼아 수첩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특검이 제시한 이 부회장의 주요 혐의 대부분이 1차 구속영장 청구 당시와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에 또다시 ‘뇌물의 대가성 입증 부족’을 이유로 영장이 기각될 가능성이 있다.
한 판사는 지난달 특검이 최 씨의 딸 정유라 씨(21)의 부정 입학과 학사 특혜에 관여한 혐의로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55)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김준일 jikim@donga.com·장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