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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무 오 나의 키친]생굴, 굴전, 굴무침, 굴국밥…

입력 | 2017-02-15 03:00:00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 ‘오 키친’ 셰프

약 200명의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프랑스 레스토랑 ‘로란’에서의 일이다. 전채 요리로 새우 칵테일, 크래브 케이크, 훈제 연어, 수프도 있지만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생조개와 굴이었다. 크기에 따라 3종의 조개와 전 세계에서 들여온 5종의 굴을 준비한다.

굴은 정력을 강화하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짧은 점심시간에 대부분이 전채 요리로 굴을 주문하는 것은 영양에 비해 위에 부담이 없어 오후 업무에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굴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자코모 카사노바(1725∼1798)다. 최고의 지성인으로 추앙받았지만, 122명의 젊은 여성과 관계했다고 자서전에 회고한 후 바람둥이의 대명사가 되었다.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왔을까. 그는 매일 50개의 굴을 아침 식사로 먹었다고 한다.

나의 조수인 바딜로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으로 10년 동안 레스토랑에서 굴 껍데기 까는 일을 했다. 내가 1개 깔 때 3개를 깔 정도로 도사 수준인데 나에게 자기보다 월급도 많이 받으면서 굴도 못 깐다고 장난을 쳤다.

굴은 항상 얼음으로 덮어 냉장고에 보관해 사용한다. 주문에 맞춰 바쁘게 굴을 까다 보면 얼음물에 손이 마비될 정도로 무감각해지는데, 특히 프랑스의 베론종 굴은 껍데기 두께가 칼날처럼 얇고 잘 부스러져 손바닥을 찌르기 십상이다. 찢어진 손바닥에 균이 퍼지면 퉁퉁 붓기도 해 항상 정신 차리고 정확한 방법대로 까야 한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내 손바닥에는 상처가 남아 있지만, 바딜로의 손은 상처투성이다. 수차례 실수가 쌓이면서 그는 나를 동지로 인정해 주었으며 내가 절절매고 있을 때마다 도와주는 친구가 되었다.

대부분의 갑각류와 달리 굴은 냉장고에서 4주 동안 보관이 가능하다.

굴은 선사시대부터 먹기 시작하였으며 로마시대에 양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채취되고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한국에도 신선하고 맛 좋은 굴이 많다. 가격도 미국과 프랑스의 반값도 안 될 만큼 싸다. 너무 싸고 많아 도리어 천대받는 느낌이 들 정도다. 요즘에는 전 세계 바다가 오염이 심해 주의가 필요하다. 익혀 먹는 경우엔 크게 상관없지만 생식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와인 셔벗과 생굴, 굴전을 한 접시에 담은 요리.


 
19세기 뉴욕에서 굴은 서민들을 위한 값싼 식품이었다. 그런데 많은 오이스터 바들이 생기면서 수요가 증가하고 공급이 원활하지 않자 가격이 올라가게 된 것이다. 오이스터 바 가운데 1913년 문을 연 뉴욕의 명물, 그랜드 센트럴이 유명하다. 대표 요리는 생굴이지만 굴 스튜와 굴 록펠러가 인기다. 굴 록펠러는 거부 록펠러의 성을 딴 요리인데, 굴에 버터와 허브, 레몬즙을 뿌려 익힌 요리다. 프랑스식 달팽이 요리와 조리법이 비슷하다.

미슐랭 3스타 셰프인 토머스 켈러의 굴 요리도 빼놓을 수 없다. 메뉴는 ‘굴과 진주’, 타피오카를 조리해 진주처럼 사용하고 굴, 캐비아와 함께 낸다. 상상만으로도 모양새와 맛이 느껴지는 요리다.

굴을 사용하지도 않는데 굴이란 이름을 가진 요리도 있다. 세계의 가장 희한한 음식 중 하나인 ‘로키산의 굴’이다. 황소 불알을 빵가루 묻혀 튀긴 요리로 케첩이나 칵테일소스를 뿌려 먹는다. 패주 튀김 같은 맛이라고 하니 느낌이 굴과 비슷할 거 같다.

굴전, 굴무침, 굴국밥 또는 새해에 먹는 굴떡국. 나는 많은 한국의 굴 요리 중 보쌈을 가장 좋아한다. 어느 날 나의 아내는(그 당시에는 여자 친구였지만) 나를 뉴욕의 어머니 집으로 데려갔다. 나를 어머니에게 선보이려는 의도였지만 그 당시 나는 한국말을 못 했고 어머니는 영어를 못 해 서로 대화하기가 힘들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왜 하필이면 일본 사람이냐”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가 해주신 요리를 감탄하며 먹는 내가 밉지는 않았던 거 같다.

생김치에 싸 먹는 삶은 돼지고기와 생굴, 새우젓의 조합은 처음 맛보는 조화였다. 직업상 맛을 보며 재료의 조화를 먼저 따져 보게 되는데 요리사의 머리로 개발했다기보다는 오랜 시간을 거듭해 개발되어 온 토속음식으로 느껴졌다. 그날 이후 나는 겨울이 오면 굴을 곁들인 보쌈을 찾아 먹는다.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 ‘오 키친’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