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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김정일 사랑 독차지하던 ‘성혜림 아들’ 김정남 피살, 어쩌다…

입력 | 2017-02-15 11:13:00

사진=북한 김정남 아들로 알려진 김한솔 페이스북에 연동된 김정남 사진.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것으로 알려진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은 1971년 김정일과 여배우 성혜림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한때 유력한 후계자로 주목받았다.

김정일은 이미 결혼해 딸까지 두고 있던 성혜림을 강제 이혼시킨 뒤 동거해 1971년 김정남을 낳았다.

하지만 다른 남성과 결혼한 적이 있고 김정일보다 나이가 많았던 성혜림은 김일성에게 며느리로 인정받을 수 없었다. 김정일은 1974년 중앙당 전화교환수 출신인 본처 김영숙과 결혼해 딸 설송 춘송을 낳았고, 1976년에는 무용수 출신 고영희를 애첩으로 맞아 1981년 정철, 1983년 정은을 각각 낳았다. 네 번째 여자는 개인 비서 겸 부인으로 알려진 김옥이다.  

성혜림은 김정일이 김영숙과 결혼한 후 아들 김정남을 모친과 언니 성혜랑에게 맡기고 러시아 모스크바로 떠났다.

김정남은 어린 시절 김정일의 ‘대단한’ 사랑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성혜림이 떠난 후 김정남을 맡아 키웠던 성혜랑은 “김정일이 김정남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정도”라고 밝혔다.

또 김정남과 함께 지내며 말동무 역할을 했던 성혜랑의 아들 이한영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은 우유병을 들고 아들의 오줌을 직접 받아냈고 해마다 생일이면 100만 달러 이상어치의 장난감을 사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여러 증언들을 종합해봤을 때 김정일은 김정남을 후계자로 키우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김정남이 2001년 5월 일본에 밀입국했다가 적발돼 강제 추방되면서 김정일의 눈 밖에 났다는 주장에 대해 “설득력이 없다”며, 이미 그 전부터 김정남이 후계자 자리에서 밀려났다고 주장했다.

정 실장은 “김정일이 김정남에 대한 애정을 김정철 등 새 아이들에게 옮겼다”는 성혜랑의 주장을 언급하며, 김정남이 2001년 밀입국 추방 사건 이전부터 후계자 자리에서 밀려났다고 말했다.

그는 “1980년 김정남이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은 김정일이 그를 국제 감각이 있는 지도자로 키우고자 하는 의도에서 결정된 것이 결코 아니다”라며 “김정남이 바깥세상과 철저히 격리된 상태에서 단 한명의 친구도 없이 기형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그의 외할머니가 김정남을 정규교육에 넣기 위해 김정일의 반대를 무릅쓰고 겨우 설득해 얻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학생활 중)사춘기의 김정남이 밤에 바(bar)에 나가기 시작하자 겁을 먹은 성혜림의 어머니가 김정남을 평양으로 데리고 들어감으로써 10대 후반의 나이에 김정남의 유학생활은 끝나게 됐다”며 “그러므로 김정남이 제네바 대학에 진학해 정치학을 전공했다는 일부 주장은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고영희에게서 김정철과 김정은이 태어난 후 김정남은 부담스러운 존재가 됐고, 제네바에서 귀국한 후 극도로 통제된 생활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정남이 사실상 북한을 떠난 건 2000년대 중반. 하지만 2005년 오스트리아 김정남 피살 시도설, 2009년 평양에서 김정남 일파에 대한 습격설이 나올 정도로 형제간의 권력 다툼은 심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 실장은 “김정남 암살은 김정은의 직접적 승인이나 동의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면서 “그동안 북한 정찰총국이 김정남 감시를 맡아왔고, 요인 암살에 관여하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정찰총국이 직접 관여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최정아 동아닷컴 기자 cja091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