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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의 사회탐구]문재인은 왜 토론을 피하나

입력 | 2017-02-16 03:00:00


정성희 논설위원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에 출연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책 많이 읽는 사람 중 제일 말 못함’이라는 자신에 대한 악플을 읽은 뒤 “말을 더 잘하면 좋긴 하겠다”고 웃어넘겼다. 부인 김정숙 씨는 “남편이 한 종편방송에서 시원하게 말하지 못한 것을 밤새 후회했다”고도 말했다.

안희정 이재명 “제발 토론 좀…”

필자도 생방송 중에 말이 엉키거나 방송이 끝난 뒤 하고 싶은 말이 떠올라 머리카락을 쥐어뜯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격하게 공감한다. 이명박(MB) 대통령식 표현을 빌리자면 나도 해봐서 아는데 말은 재주로 하는 게 아니다. 말은 사고의 결과물이므로 사고만 정돈돼 있으면 답변이건 토론이건 할 수 있다.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말을 들으면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라고 한 비트겐슈타인의 통찰력에 감탄이 나온다.

12일 열릴 예정이었던 민주당 지방의원협의회 초청 대선 후보 토론회는 문 전 대표의 불참 통보로 무산됐다.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명망과 대세에 의존해 (대통령을) 선택해 이뤄진 결과가 얼마나 참혹했는지 체감하고 있다”며 제발 토론 좀 하자고 거의 울고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 측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측은 토론을 안 하는 이유에 대해 지금은 대선 주자 경쟁이 아니라 탄핵 인용에 집중할 때라는 논리를 펴지만 연일 정책발표회를 통해 대선 공약을 발표하는 걸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문재인 캠프 사령탑을 맡은 송영길 선거대책본부장은 얼마 전 “국가 예산과 세금으로 나눠주는 것을 누가 못 하냐”며 문재인의 공공일자리 81만 개 공약에 대해 비판했다. 문재인은 이에 대해 “후보는 접니다”라고 한마디로 뭉개버렸다. 이견과 토론을 용납하지 않고 받아쓰기만 시키는 행태는 박 대통령의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이런 모습은 언론과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문 전 대표가 8일 성남의 한 중소기업 ISC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일자리 공약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문재인 측근들은 기자들의 접근을 물리적으로 막았을 뿐 아니라 질문할 때도 “여기까지 하실 게요”라며 추가 질문도 차단했다. 오죽하면 현장 기자들이 항의성명을 냈을까. 여기서 다시 오버랩되는 것이 기자회견을 꺼리고 사전에 조율된 질문만 받는 박 대통령이다.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기권과 관련해 ‘송민순 회고록’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문 전 대표는 “나도 의견을 말하기보다 주로 들었던 것 같다. 다수 의원이 기권으로 기울어져 기권으로 결론이 난 것 같다”고 했다가 다음엔 “기억이 안 난다. 잘 모르겠다”고 했다. 최악은 다음이다. 거듭되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그 질문은 안 하기로 했죠?”라며 질문 자체를 못 하게 했다. 곤란한 질문은 무시하는 태도로 운영하는 국정은 어떤 모습일까.

준비된 ‘재수 후보’라더니

문재인은 지금 본인 스스로 대세라며 준비돼 있다고 주장한다. 재수 강세 신화를 믿는 나는 이 말도 믿고 싶다. 하지만 질문과 토론을 피하는 걸 보면 미심쩍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고별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거친 질문 때문에 백악관이 제 기능을 할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따지고 보면 박 대통령도 대면 접촉을 늘리라는 기자들의 충고를 들었으면 오늘날 탄핵 사태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백악관의 전설 헬렌 토머스 기자는 생전에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왕이 된다”고 했다. 문재인은 벌써부터 왕이 되려는 건가.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