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피살]北의 암살 동기 탈북 간부 등 대북 소식통 분석
공항 피살 현장 삼엄한 경비 15일 오전(현지 시간) 말레이시아 경찰들이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피살된 쿠알라룸푸르공항 2터미널 현장을 삼엄하게 경비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 입국한 날짜는 이달 6일이다. 피살 시점인 13일 오전까지 일주일의 시간이 있었다. 살해된 장소도 공항 화장실 등 후미진 곳이 아니라 출국장 바로 앞이었다. 김정은의 지시나 북한 권력기관의 충성 경쟁에 따른 암살이 맞는다면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공개된 장소에서 김정남을 제거하려고 한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 의도적으로 대낮에 범행?
정보기관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15일 “공작은 대범하게, 치명적인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충격요법이 되는 데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행동에 옮길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다. 2006년 11월 영국으로 망명했던 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는 런던 시내 호텔에서 독극물에 감염된 뒤 5일 만에 숨졌다. 사용된 독극물이 러시아산(産)이라는 심증은 있었지만 끝내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국가정보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에서 김정남에 대한 암살 기도가 5년 전부터 지속돼 왔다고 보고했다. 그동안 암살 지령이 ‘스탠딩’(유효한 상태)이었다는 점에 비춰 보면 김정은이 갑자기 살해를 결심한 게 아니라 북한 공작 조직에서 최적의 장소와 시간에 맞춰 행동을 감행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 고위 탈북자는 “마카오에서 누군가가 사업 아이템 등을 제시하며 김정남을 꾀어냈고 현혹된 김정남이 마카오 귀로에 오르자 항공편, 동선을 파악한 공작원들이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일 생일 75주년(16일)을 앞두고 정찰총국 등이 김정은에게 충성 경쟁을 벌이면서 김정남을 제거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정은 집권 이후 탈북한 전 북한 고위 간부는 김정남 피살 시점과 관련해 “김정남의 ‘약발’이 다 떨어졌고 기댈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일 생전에는 경제적으로 풍족했고 북한 정보도 많았던 김정남이기에 딴마음을 먹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궁지에 몰렸기 때문에 언제든 망명 등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김정은이 판단했을 수 있다. ‘끈 떨어진 김정남이 더 위협적’이라고 해석한 대목은 역설적이다. 김정남의 보호막 역할을 했던 고모 김경희가 더 이상 김정은을 견제하지 못하게 되면서 살해 작전이 행동에 옮겨졌을 수도 있다.
○ “김정은 출생 비밀을 쥔 시한폭탄?”
김정은이 김정남을 집요하게 제거하려 한 것은 통치의 ‘정통성’과 직결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 간부는 “김정남은 존재 자체가 문제”라며 “북한에서 철저히 함구했던 김정남의 존재가 드러나면 김정은 수령 체제에서 가장 약한 고리인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김옥은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1년 가까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였다. 고용희의 존재조차 비밀로 해온 김정은에게 이보다 더한 ‘김옥 생모설’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김정남이 실제 망명을 시도해 김정은의 출생 비밀 등을 공개하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얘기다.
해외에서 10년 넘게 머물며 북한의 화폐 위조와 마약 제조 등 불법 행위를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김정남의 입을 영원히 닫게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신변 위협이 5년 가까이 이어진 점에 비춰 김정남은 자신과 직계가족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비망록을 작성해 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종의 보험인 이 비망록에는 자신이 그동안 지켜본 북한 사회, 김정일 김정은 부자의 약점 등이 상세히 적혀 있을 수도 있다.
조숭호 shcho@donga.com·우경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