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시죠>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최지훈 호호스프 대표
우리는 함께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학교생활은 사무직 종사자가 되기 위한 연습의 나날이었다. 고3 때는 체육시간마저 교실에서 공부해야 했다. 대학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화이트칼라를 꿈꾸는 사람끼리, 화이트칼라가 되기 위한 교육과정을 차곡차곡 밟았다.
동혁이는 대학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사무직이 되는 길은 자신과 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대장장이는 못 됐지만 병원 등에 산소통을 공급하는 일을 시작했다. 나는 계속 사무직을 꿈꾸다가 공무원 시험에 계속 낙방하며 결국 화이트칼라가 되는 과정에서 낙오했다. 사무직만 꿈꾸며 살던 인생에서 한발 삐끗하자 내가 진정 사무직이 되길 원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나무로 카운터와 상부 장을 직접 짜려고 했다. 하지만 신발장 하나 만들어 보려다 한 달간 톱밥만 먹고 실패했다는 친구의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가게 근처의 목재상을 찾았다. 큰 키에 구릿빛 피부, 먼지가 살짝 앉은 짧은 머리카락의 아저씨가 연필을 귀에 꽂은 채 나를 맞았다. 콘셉트와 치수를 설명하니 그는 귀에 꽂혀 있던 연필을 빼 쥐더니 종이에 건성건성 옮겼다. 대충 받아 적는 것 같아 종이를 슬쩍 보니 그가 그리던 예상도는 내 머릿속에 있던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영문을 모르는 그에게 엄지를 내밀 뻔했다.
그 모습을 보며 가만히 생각했다. 나는 어릴 때 기계를 분해하는 걸 좋아했다. 라디오든 게임기든 드라이버로 열어 봐야 직성이 풀렸다. 나무토막을 깎아 퍽을 만들어 친구들과 아이스하키를 하기도 했다. 원래 몸으로 하는 일과 놀이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러니 의아했다. 나는 왜 화이트칼라를 꿈꾸게 됐을까. 혹시 꿈을 강요받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세대부터 이어져 온 사농공상의 계층 의식. 거기에 더한 교육의 몰개성. 그리고 무조건 양복을 입고, 육체노동의 궁핍한 현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고속 성장 시대의 패러다임까지. 그럴싸한 근거는 많아 보인다. 결국 화이트칼라가 최고라는 교육을 받아 온 부모님 세대가 대한민국을 그저 그런 화이트칼라 지망생들로 채워진 몰개성의 나라로 만들어 버린 건 아닐까 싶다.
모두가 한 점을 보고 달리면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한 이들은 문 근처에 서로 엉켜 쌓이게 된다. 나처럼 나가떨어지는 이가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나마 작은 희망이라도 찾는다면 최근 들어 우리나라가 점점 개성을 존중해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만들어진 신조어 중에 ‘취존’이라는 말이 있다.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시죠’를 줄인 말이다. 통일성이 미덕이던 사회가 개성을 드러내도 손가락질받지 않는 사회로 바뀌어 간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최지훈 호호스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