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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고유환]수령체제가 살해한 비운의 황태자

입력 | 2017-02-16 03:00:00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수령체제의 비운의 황태자 김정남이 피살됐다. 정확한 사인은 부검 등을 통해서 밝혀내야 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북한 공작원에 의한 독살 가능성이 높다.

김정남은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태어난 백두혈통의 장손이지만 김일성의 인정을 받지 못한 ‘곁가지’다. 김정일이 건재할 때는 후계자로 거론될 정도였지만 김정일이 사망하고, 후견인인 장성택이 처형되면서 김정남은 김정은 체제의 이단아로 전락했다. 김정일이 뇌중풍을 앓을 때 프랑스 의사에게 치료를 의뢰하는 일을 끝으로 수령체제 안에서의 김정남의 역할은 끝났다.

인정받지 못한 이단아

김정남은 스위스 유학 경험이 있고 중국의 개혁 개방 과정을 체험한 개화된 인물로 수령체제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 분자’였다. 김정남은 국제 규범을 중시하면서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을 비판하고 북한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등 반체제 성향을 보였다.

일본 기자 고미 요지가 정리한 책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에서 김정남은 “개혁 개방을 하지 않으면 북한이 무너지고, 개혁 개방을 할 때는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정남은 북한이 개혁 개방을 추진하든 안 하든 국가나 정권 중 어느 하나의 붕괴가 불가피하다고 봤다.

세습 비난 등 반체제 성향

김정남이 북한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해외를 떠돌면서 귀국을 거부하자 반체제 세력의 중심이 되거나 한국 등 서방세계로 망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북한이 제거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화근을 사전에 제거하여 김정은 체제의 권력 공고화 작업을 마무리하려는 의도에서 김정남을 제거했을 가능성에 우선순위를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김정남은 김정은 체제가 공식화된 이후부터는 공개 활동을 자제해 왔지만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중국과 동남아를 떠돌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불안한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태영호 공사의 망명을 계기로 해외에 머물고 있는 북한 고위 인사들과 대외부문 일꾼들에 대한 검열이 강화되고, 북한 내부에서도 권력의 생리를 잘 아는 빨치산 후계 세대들에 대한 숙청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남의 암살은 김정은 체제의 권력 공고화 작업의 마무리 차원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에 비중을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김정남이 백두혈통의 곁가지란 점에서 김정은의 지시 없이 살해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찰총국 등 관련 기관이 충성 차원에서 골칫거리인 김정남을 제거하고 김정은의 부담을 덜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부검과 범인 검거 등을 통해서 북한의 소행으로 확정될 경우 북한의 ‘불량국가’ 이미지는 강화될 것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서방세계가 김정은 정권을 공개처형과 암살을 자행하는 폭정으로 규정하고 정권 교체의 명분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수령체제는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하고 이복형인 김정남을 살해할 정도로, 김정은의 유일영도체계에 어긋나는 요소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응징을 가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딴마음을 먹지 못하게 하면서 백옥같이 순결한 충성을 강요하는 것이 수령체제다.

미, 대북 대응도 강경해질 듯

미국의 전략적 인내와 한국의 기다리는 정책은 북한에서 수령체제가 유지되는 한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란 전제 아래 제재와 압박을 통해서 북한의 근본적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붕괴되지 않았고 핵·미사일 능력은 나날이 고도화되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새로운 대북정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북한은 ‘북극성-2형’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김정남을 살해함으로써 대화보다는 선제타격과 참수작전 등 군사적 수단의 사용 가능성을 높였다.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전후 자제해 왔던 전략적 도발을 강행하고 공포정치를 지속하면서 수령체제의 유지·강화에 주력하는 모습을 볼 때 미국의 새로운 대북 접근법은 더욱 강경해질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체제가 김정남이 그토록 원했던 개혁 개방을 거부하고 수령체제 강화에 급급한 외눈박이 무리수들을 지속할 경우 오히려 수령체제의 수명 단축을 재촉하게 될 것이다. 연이은 북한의 나쁜 행동들은 한반도 현안들에 대한 대화를 통한 대타협의 가능성을 어둡게 하고, 군사적 수단의 사용 가능성을 높이는 악재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