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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시간 딱 5초… 기획자 지시 수행한 ‘청부암살단’에 무게

입력 | 2017-02-17 03:00:00

[김정남 피살/암살범 정체는]현지 수사당국 암살 배후 추적




그래픽=김성훈, 서장원 기자

김정남 살해 용의자 2명이 체포됐지만 여전히 누가, 왜 김정남을 살해했는지는 베일에 가려 있다. 북한의 공작기관이 개입한 청부살인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공범들이 모두 붙잡혀야 사건의 전모가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 어설픈 여성 용의자

16일 현지 언론과 경찰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6명의 일당이 공모해 치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이들이 각기 다른 호텔에 머무르다 범행 전날 같은 호텔에 함께 투숙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때 범행이 모의됐을 가능성이 높다.

경찰에 체포된 2명의 여성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베트남 국적의 여성 도안티흐엉은 “장난인 줄 알고 일행인 남성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 국적 여성 시티 아이샤도 경찰 조사에서 “쿠알라룸푸르의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며 (몰래카메라 같은) 장난 비디오에 출연하면 100달러를 주겠다고 하기에 ‘인기인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범행에 가담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고 현지 중국계 신문 중국보(中國報)가 보도했다.

하지만 이들은 범행을 치밀하게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흐엉은 범행 뒤 공항 택시 정류장으로 급히 달아났다. 당시 흐엉은 왼손에 검은색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가 범행 당시 장갑을 끼고 있었다는 점은 자신이 독극물을 만진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흐엉이 택시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포착된 폐쇄회로(CC)TV 화면에서는 장갑이 없었다. 도주 중 장갑을 버린 것이다.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서 장갑을 버렸을 가능성이 있다. 또 이들 일당은 김정남이 6일 말레이시아 입국 뒤 13일 마카오로 출국하려고 하기까지의 일정과 동선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여성들이 체포된 과정은 너무 어설프다. 이들은 도주 시도조차 하지 않고 체포됐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이 북한이 ‘외국용병’을 매수해 사주한 사건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북한이 이런 방식으로 요인을 살해한 것은 이례적이다.

○ 배후 숨기려 청부살인 가능성

북한이 해외 테러리스트를 고용해 테러를 저지른 전례는 있다.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 당시 북한은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아부 니달’ 조직원을 서울에 보내 김포공항에서 폭탄테러를 일으켜 5명을 사망케 했다. 이때 북한은 500만 달러를 지불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여성 용의자들은 훈련된 조직원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이런 까닭에 이번 범죄는 기획자가 따로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에서 해외 공작 업무를 맡고 있는 정찰총국이 관여하면서 배후가 드러나지 않도록 외국인들을 고용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말레이시아 당국도 이번 암살을 막후 기획집단이 따로 있는 청부암살단에 의한 살인일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수사당국이 정찰총국 소속일 가능성이 있는 40세 북한 남성을 추적 중인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현지 중문지 둥팡일보는 현지 고위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말레이시아 수사당국은 테러에 연관된 6명은 김정남 암살을 청부받고 임시로 구성된 조합이지만 특정 국가 정보기관 소속의 공작원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들 암살단이 임무가 없을 때에는 일반인처럼 생활하다가 일단 지령을 받으면 암살자로 활성화된다고 전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이번 김정남 살해 모의를 계획하고 의뢰한 막후 집단, 또는 지시 국가도 어느 정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아직까지 배후를 특정하지는 않고 있다.

일부 탈북민은 김정남을 살해한 방식이 북한의 공개처형을 모방해 섬뜩하다는 반응도 보였다. 북한에선 죄수를 공개처형할 때 눈을 가리고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죽인다. 김정남의 경우도 조용한 장소에서 독침을 찌르는 대신 굳이 사람이 많은 국제공항을 택했고, 헝겊으로 얼굴을 덮고 죽였다면 북한의 공개처형 방식에 가깝다는 것이다.

○ 5초 만에 끝난 테러

공항에서 김정남을 살해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5초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레이시아 일간 뉴스트레이츠타임스가 16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김정남은 13일 오전 9시(현지 시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내 저비용항공사 전용 터미널에 도착했다. 진한 푸른색 폴로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의 김정남은 키오스크(셀프 체크인 기기)로 향해 줄을 섰고, 그를 지켜보던 여성 두 명이 그에게 다가갔다. 여성 한 명이 앞에서 김정남의 시선을 끄는 사이 다른 한 명이 뒤에서 김정남의 목을 조이며 순식간에 범행을 실행했다. 공항 CCTV에 찍힌 범행 시간은 5초였다.

이 신문은 김정남의 시신에는 아무런 주사 자국이 없었다고 전했다. 범인들이 독극물을 얼굴에 스프레이로 뿌리거나 독극물이 묻은 헝겊으로 살해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보는 김정남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15m를 뛰어와 공항직원에게 도움을 청하며 “너무 아프다. 누군가 내게 액체를 뿌렸다”고 호소했다고 전했다.

주성하 zsh75@donga.com·황인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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