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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의 히트&런]이치로가 라커룸 소파 멀리하는 까닭은

입력 | 2017-02-17 03:00:00


“앞으로 30년간 일본을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게 해주겠다.” 2006년 열린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앞두고 일본 선수 스즈키 이치로(44·마이애미·사진)가 한 말이다. 결과적으로 이 말에 자극받은 한국이 일본을 여러 차례 이기긴 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할 만큼 이치로는 자신감이 넘쳤다. 신체적으로, 또 기술적으로 전성기를 보내고 있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넘게 지났지만 이치로는 여전히 현역이다. 최근 메이저리그 홈페이지가 발표한 올해 최고령 현역 순위에서 이치로는 전체 2위에 올랐다. 1973년 10월 22일생인 그보다 생일이 빠른 선수는 애틀랜타 투수 바톨로 콜론(1973년 5월 24일생)뿐이다.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 최고령 선수는 각각 올해 43세가 되는 최영필(KIA)과 이와세 히토키(주니치·이상 투수)다. 이치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야수인 셈이다.

실력은 예전 같지 않다. 2001년 시애틀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뒤 10년 연속 200안타 이상을 기록한 뒤 2011년부터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대수비와 대주자 등 ‘제4의 외야수’로는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지난해에도 143경기에 출전해 타율 0.291에 1홈런, 22타점, 10도루를 기록했다.

독설가로 유명한 노무라 가쓰야 전 라쿠텐 감독은 이치로에 대해 “노력하는 천재는 무섭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빠른 발과 강한 어깨, 공을 방망이에 맞히는 능력을 타고났다. 하지만 최고령 야수가 될 정도로 좋은 몸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하나마쓰 고지 전 KIA 트레이닝 코치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치로의 몸은 유연하지 않다. 오히려 뻣뻣한 편이다. 스트레칭을 많이 해줘야 하는 몸”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치로는 누구보다 유연성 훈련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그는 가장 먼저 야구장에 나와 몸을 푸는 선수다. 경기 중간에도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부상 방지를 위한 그의 자세는 병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다. 그는 라커룸에 놓여 있는 편안한 소파에 절대 앉지 않는다. 허리에 좋지 않다는 게 이유다. 그 대신 개인적으로 준비한 딱딱한 의자를 사용한다. 스파이크를 신고는 절대 계단을 이용하지도 않는다. 미끄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매일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면서 25년간의 프로 선수 생활(일본 9년, 미국 16년) 동안 큰 부상을 당한 적이 없다. 시애틀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추신수(35·텍사스)는 “인간적으로는 몰라도 야구 선수로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3000안타(3030개)를 돌파한 이치로는 명예의 전당행을 예약해 뒀다. 일본 야구(1278개)까지 합치면 모두 4308안타를 쳤다. 그런 그가 언제까지 현역으로 남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팀이 옵션을 행사하면 이치로는 2018년까지 마이애미에서 뛰게 된다. 어쩌면 49세에 은퇴한 훌리오 프랑코(전 뉴욕 메츠)를 넘어 역대 최고령 야수라는 새 전설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