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지는… 좀 이상하다. 특이하다는 게 아니라 다르다는 뜻이다.
루지는 봅슬레이, 스켈레톤과 함께 썰매 종목 중 하나다. 트랙(경기장)도 봅슬레이, 스켈레톤과 같은 곳을 쓴다. 그런데 연맹은 따로다.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은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에서 주관하지만 루지는 국제루지연맹(FIL)이 따로 있다.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도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과 대한루지경기연맹이 별도다.
여기서 잠깐 아직도 헷갈리시는 분들께 설명 드리자면 얼음 위의 포뮬러원(F1)이라고 부르는 차처럼 생긴 썰매를 타고 달리는 게 봅슬레이, 납작한 썰매에 엎드려 타는 게 스켈레톤이다. 루지는 누워서 탄다. 루지 썰매는 엉덩이 받침대가 있다는 걸 제외하면 널찍한 판 아래 날이 달린,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형태다. 세 종목 모두 썰매 모양이 다르지만 굳이 따지자면 차 형태로 된 썰매를 타는 봅슬레이보다는 스켈레톤과 루지가 더 비슷하다. 그런데도 스켈레톤이 루지가 아니라 봅슬레이와 짝을 이룬 이유는 뭘까.
그 자리에 대신 들어간 게 루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1954년 스켈레톤 대신 루지를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넣기로 결정하면서 1957년 FIL이 국제봅슬레이연맹(FIBT)에서 독립했다. 루지는 1964년 인스부르크(9회) 대회 때부터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됐다. FIBT가 2015년 이름을 바꾼 게 바로 IBSF다.
그렇다고 루지가 계속 FIBT와 함께 했던 건 아니다. 첫 국제 루지 단체는 1913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문을 연 국제썰매스포츠연맹(ISSF)였다. 이 단체는 1935년 FIBT와 합병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다고 독일의 힘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다. 역대 루지 올림픽 금메달 44개 중 31개(70.5%)를 독일에서 가져갔다. 한국 양궁도 올림픽 금메달 40개 중 23개(57.5%)밖에 따내지 못했다. 한국 루지가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긴급 수혈’한 여자 선수 에일린 프리쉐(25) 역시 독일 출신이다.
스켈레톤은 올림픽에서 빠지면서 잊혀진 종목이 되는 듯했다. 그러다 1970년대 들어 봅슬레이와 똑같은 트랙에서 경기를 치르는 ‘봅슬레이 스켈레톤’을 개발하면서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FIBT는 1980년대 후반 스켈레톤 학교를 만들고 선수를 키우면서 스켈레톤 종목 육성에 나섰고 결국 2002년 다시 스켈레톤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원래 썰매 경기는 자연 환경을 그대로 살려 경기장을 짓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런 경기장에서는 엎드려 썰매를 타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평창 슬라이딩센터 같은 인공 트랙이 늘면서 스켈레톤 경기 진행이 수월해진 것 역시 스켈레톤의 부활에 영향을 줬다.
한국에는 루지가 제일 먼저 들어왔다. 1989년 처음 생긴 썰매 종목 단체 이름도 대한루지경기연맹이었고, 1998년 나가노 대회 때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것도 루지였다. 그 뒤 이 연맹은 1992년 대한루지봅슬레이경기연맹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2006년 대한루지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으로 다시 바꿨다. 그 뒤 2008년 국제 흐름에 따라 루지와 봅슬레이스켈레톤이 분리됐다.
평창=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