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김정남 만나 책 펴낸 日언론인 “후계자서 밀려난 진짜 이유는…”

입력 | 2017-02-17 16:55:00

일본 도쿄신문의 고미 요지(五味洋治·59) 편집위원.


“지금 칭찬하고 싶은 것은 그의 ‘용기’다. 김정남은 북한의 세습에 반대한다고 말하면서 온몸에 진땀을 흘리며 괴로운 기색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일본 도쿄신문의 고미 요지(五味洋治·59) 편집위원은 17일 도쿄 주일외국특파원클럽(FCCJ)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정남과의 첫 대면 인터뷰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인터뷰는 2011년 1월 3일 마카오에서 이뤄졌다. 회사에는 휴가로 해두고 아내와 마카오로 향했다. 혹 신변에 이상이 생길 경우를 생각해 회사 책상 서랍에 행선지와 항공편, 호텔, 일정 등을 적은 쪽지를 넣어놓았다. 그렇게 만난 김정남에 대해 그는 “나름의 결심을 통해 북한의 시스템에 대해 비판하고 싶어했다”며 “자신의 발언이 가져올 위험을 예견하면서도 자기 생각이 평양에 전달되기를 바랐던 듯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작성된 원고를 사전에 김정남에게 보여주고 도쿄신문에 게재했다. 이후 김정남으로부터 “북한의 경고가 있었다‘며 ”당분간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그래도 교류는 계속하자“는 이메일이 왔다. 그해 5월에 베이징에서 또 만났다.

그는 자신이 본 김정남의 생각을 요약하면 △권력세습은 사회주의 체제와 맞지 않는다 △지도자는 민주적 과정을 통해 선출돼야 한다 △중국식 개혁개방만이 북한의 살 길이다 등이라고 전했다. 김정남이 이런 발언들, 혹은 관련보도 때문에 암살됐다고 한다면 이에 대한 비판은 이런 발언으로 한 인간을 말살하는 자들에게 돌려져야 마땅하다고도 말했다.

그는 13일 피살당한 김정남과 가장 많이 접촉한 저널리스트다. 2004년 중국 베이징(北京)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뒤 2011년 1월과 5월에 총 7시간 대면 인터뷰를 했고 150회 가량 이메일로 교신했다. 이 내용은 2012년 초 고미 의원의 저서 ’아버지 김정일과 나‘(한국어판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책을 낸 이유에 대해 자신이 알게 된 김정남의 사상과 인간성, 북한에 대한 생각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북한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북한과 다른 나라들의 관계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정남은 저서 출판에 대해 미리 허락했으나 발간 시기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었다고도 했다. 2012년 1월 그가 출간 준비가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전하자 김정남이 ”당분간 연락하지 말자“는 이메일을 보내온 게 마지막 교신이 됐다.

김정남이 이복동생 김정은을 어떻게 평가하더냐는 질문에 그는 ”김정남은 평생 김정은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어 그의 성정 등에 대해 말할 수 없다고 했다“며 ”처음에는 이 말을 믿지 않았으나 많은 탈북자나 전문가들의 의견도 같았다“고 전했다.

세간에는 김정남이 2001년 5월 가짜 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다 적발된 사건 때문에 북한의 권력구도에서 배제된 것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김정남은 이를 부인했다고 한다.

”김정남은 9세 때 스위스로 유학을 떠나 20세가 채 되기 전 북한에 귀국했다. 1990년대 초반 김정일 위원장과 전국의 경제개발 상황을 시찰하러 다녔는데, 유럽에서 본 사회와 북한의 실상이 너무 달라 아버지와 의견이 맞지 않았고 급기야 북한을 떠나게 됐다고 했다. 이런 얘기를 종합하면 적어도 한때는 김정일이 그를 후계자로 봤지만 일찌감치 후보에서 제외한 것같다.“

또 당시 일본 입국 때 쓰인 도미니카공화국 명의의 가짜여권에 대해 김정남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그 일 뒤 북한은 방침을 바꿔 가명을 쓰더라도 여권은 북한 것을 쓰도록 했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그는 ”김정남은 중국에서의 보호를 귀찮아하기도 했고 최근 들어 중국의 보호가 약해졌다는 얘기도 있었다“며 ”중국과 김정남의 관계가 이전처럼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이번 사건을 계기로 중국과 북한 사이의 관계가 나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고 했다.

고미 위원은 김정남이 숱한 언론인 중 자신에게 생각을 털어놓은 이유에 대해 자신이 진지하게 접근한다는 것을 김정남이 알았기 때문인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2004년 김정남을 베이징 공항에서 만난 뒤 7년간 휴가 때마다 홍콩, 마카오, 싱가폴, 베이징 등을 찾아다니며 김정남과의 만남을 모색했다. 이런 움직임을 살핀 김정남이 2010년 10월 그에게 이메일을 보내왔다는 것.

그는 또 김정남 피살이 알려진 이후 3일간 수백명의 일본, 한국, 영어권 기자들로부터 연락을 받았으나 자신은 언론취재에 응하지 않는다며 ”나에게 묻지 말고 직접 북한 당사자와 맞닥뜨려 취재해달라. 그게 북한을 바꾸는 힘이 된다“고 말을 맺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