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고교 시절부터 6년 동안 러시아어 개인교사를 했던 김현식 전 평양사범대 교수(84)는 김정남의 피살 소식에 누구보다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16일(현지 시간) 미국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자택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김정남은 수수하고 괜찮은 친구”라고 평가한 뒤 “(고모부인) 장성택 부부는 김정남이 첫 조카고, 측은해서 각별이 아꼈다”고 회고했다.
그는 “김정은이 집권하자 장자인 김정남과 실세였던 장성택 모두 (김정은의 권력 유지에) 위협이 된 것”이라며 “김정은과 가는 길이 조금만 달라도 원수가 되고 처단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992년 러시아를 통해 망명한 뒤 한국을 거쳐 미국에 정착해 살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정일은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아버지 김일성의 말을 따르려고 했습니다. 정적에게도 돌아올 기회를 줬어요. 이복동생 김평일도 살려주지 않았습니까. 1972년 김일성 회갑 때 빨치산 동지들이 한자리에 모여 후계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김일성은 영도력이 뛰어난 김평일을 맘에 두고 있었지만, 최현(전 인민무력부장·최룡해 당 중앙위 부위원장의 부친)이 ‘장손이 해야겠지요’ 하는 바람에 방향이 바뀐 겁니다. 그런 김평일을 김정일이 살려준 거니 많이 배려한 거죠. 김정일은 그렇게 악한 사람은 아니에요.”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을 닮지 않았다는 건가요.
“김정은은 가장 포악한 인물입니다. 지금까지 김일성 가문에 저렇게 포악한 사람은 없었어요. 간부들은 언제 당할지 몰라 불안에 떨고 있을 겁니다.”
―공포정치에 치를 떠는 엘리트들이 정변을 일으킬 가능성은 없나요.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북한을 바꿀 수 있을까요.
“트럼프가 예측 불가능하니까 김정은은 지금 잔뜩 겁을 먹고 있을 겁니다. 트럼프가 전례 없이 강하게 나가면 북한은 고개를 숙이면서 협상을 하자고 할 거예요. 변화를 유도하려면 더 강하게 밀어붙여야 할 겁니다.”
25년 전 떠나온 조국이 최악의 공포국가로 전락해버렸지만 김 전 교수는 “북한에 있는 후학들이 세상에 눈을 떠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이끄는 게 마지막 염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인 ‘나는 21세기 이념의 유목민’(김영사) 한 권에 ‘평양 해방을 위해 힘을 다합시다’라고 적어 건네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워싱턴=박정훈 특파원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