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롯데-CJ-한화 등 기업들, ‘뇌물죄 적용’ 불똥 옮겨올까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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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17일 박영수 특별검사가 취재진의 질문 세례를 거절하는 듯한 손짓을 하며 서울 강남구 특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뇌물공여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 구속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를 입증할 발판을 확보했다. 박 대통령 측은 이 부회장 구속이 헌법재판소의 박 대통령 탄핵심판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까 우려하며 당혹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또 SK, 롯데, CJ, 한화 등 국정 농단 사건 수사 대상에 올라있는 대기업들은 특검 또는 검찰 수사가 곧 닥쳐올 것에 대비해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이 부회장 구속의 의미는 ‘삼성이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에게 건넨 433억 원이 뇌물’이라는 점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라는 게 특검의 해석이다. 삼성 측은 그동안 최 씨 모녀에 대한 승마 지원 등을 “최고 권력자인 박 대통령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라며 뇌물 혐의를 부인해왔다. 하지만 법원은 박 대통령이 삼성 측에서 뇌물을 받은 것으로 보고 이 부회장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반면 박 대통령 측은 이 부회장 구속에 대해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라며 놀란 모습이다. 박 대통령 측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구속됐지만 ‘대통령이 돈 한 푼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뇌물죄는 성립이 안 된다”며 “(특검 수사에) 법리적으로 세밀하게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 측은 내심 이 부회장의 구속이 헌재의 탄핵 심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고 대비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특검은 이 부회장 수사 기록을 헌재에 제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수사 기록에는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3차례에 걸친 독대 및 삼성의 최 씨 모녀 지원 과정 등이 상세하게 담겨 있다. 박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와 관련해 특검이 축적한 각종 증거는 헌법재판관들의 심증 형성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특검은 이 부회장 구속으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수사 기한(1차 2월 28일) 연장 신청을 거부하는 데 부담을 느낄 것으로 보고 있다. 뇌물을 준 쪽인 이 부회장에 대해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했기 때문에 돈을 받은 쪽인 박 대통령 대면조사의 필요성이 커졌다는 이유에서다.
만약 3월 30일까지 수사 기한이 연장되고 헌재가 다음 달 초 박 대통령 탄핵을 인용할 경우 특검은 박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거나 기소할 수 있다. 또 수사 기한 연장 시 특검은 삼성 외에 다른 대기업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수사를 벌일 방침이다. 이규철 특검보는 17일 브리핑에서 “대기업 수사는 특검의 수사 기한 연장과 맞물려 있다”고 밝혔다.
SK, 롯데, CJ, 한화 등 수사 대상 대기업들은 모두 삼성과 마찬가지로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출연했는데, 그에 대한 대가로 청와대에 사업 관련 청탁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일부 대기업은 총수의 사면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장관석 jks@donga.com·우경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