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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김정남, 나훈아의 ‘고향으로 가는 배’ 10번 부르더니 울어”

입력 | 2017-02-18 03:00:00

[김정남 피살]마카오서 친분 쌓은 한국여성 증언







“고향으로 가는 배∼ 꿈을 실은 작은 배∼ 정을 잃은 사람아 고향으로 갑시다.”

김정남은 구슬픈 목소리로 같은 노래를 10번이나 불렀다. 그가 부른 노래는 나훈아의 ‘고향으로 가는 배’. 노래를 끝낸 김정남은 이내 눈물을 쏟아냈다. 2010년 여름 마카오 현지에서 처음 김정남을 만나 지금까지 친분을 쌓아 온 한국 여성 A 씨가 털어놓은 내용이다. A 씨의 기억 속 김정남은 고향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비운의 황태자’ 그 자체였다. 동시에 ‘곰돌이 푸우’처럼 소탈하고 좋아하는 음식으로 스스럼없이 ‘닭발’을 꼽던 유쾌한 사람이었다.

16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A 씨는 “마카오를 오가며 사업을 하던 재일교포 지인을 통해 우연히 김정남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김정남과 세 차례 만나 공통의 관심사인 음악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A 씨는 한국에서도 페이스북을 통해 가끔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A 씨에 따르면 김정남은 한국의 음식과 노래 드라마 영화를 좋아했다. 마카오 한국식당에서는 주로 삼겹살을 먹고 소주를 마셨다. 김정남은 한국 내 지인에게 택배도 보내는 등 한국 친구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김정남이 가장 가고 싶은 곳도 한국이었다. 김정남은 A 씨도 모르는 닭발 맛집 등 한국 정보를 잘 알고 있었다. A 씨는 “한국을 못 가는 것에 한(恨)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며 “한국과 가까운 일본조차 못 가게 된 걸 많이 아쉬워했다”고 말했다. 김정남은 2001년 5월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갔다가 적발돼 추방됐다.

A 씨는 김정남이 북한 ‘로열패밀리’ 출신인 걸 과시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A 씨조차 첫 만남 때 동명이인인 줄 알고 “TV에서 보니 김정남은 헛짓거리 하는 사람”이라고 우스갯소리를 건넸다. 하지만 김정남은 화내지 않고 웃기만 했다고 한다. 김정남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부인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A 씨에게 “가끔 바가지를 긁긴 해도 아내가 재테크를 잘한다”며 “사이가 아주 좋다”고 말했다.

김정남은 북한과 이복동생 김정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사회주의 국가를 인정할 수 없으며, 김정은이 너무 불쌍하다는 게 요지였다. 술을 마시면 “아버지(김정일)가 나를 싫어한다”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A 씨는 “늘 신변 위협에 시달렸다. 북한 상황도 ‘옥경’이라는 이름의 경호원이나 일본 기자를 통해서만 듣는 것 같았다”며 “이러니까 김정남이 한국을 좋아한 것 아니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북한이 외화벌이를 위해 마약거래를 하는 것도 “방법이 잘못됐다”며 비판적이었다. A 씨는 “김정남은 전반적으로 북한 체제를 부정적으로 봤다. ‘(내가) 북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한 번은 A 씨가 “북한에도 정년(停年)이 있느냐”고 물었다. 김정남이 “그런 건 없다. 그런데 (공을 올려서 받은) 배지가 너무 많아져 (가슴에) 달 데가 없는 사람들은 등짝에도 단다”고 말해 지인들과 크게 웃었던 일화도 전했다.

정지영 jjy2011@donga.com·김배중·백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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