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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뷰스]계층배반투표의 진실과 중산층

입력 | 2017-02-20 03:00:00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장·전 지식경제부 장관

정치 포퓰리즘의 미소 뒤엔 다수의 무자비한 폭력이 숨어 있다. 2013년도 세출예산을 확정하면서 100% 무상보육 재원을 마련하려고 극빈층을 위한 무상의료 지원 예산을 삭감했다는 보도가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소름 끼칠 정도로 냉혹한 포퓰리즘 표 계산의 민낯을 보여준 사례였다. 복지 확대를 내세우는 포퓰리즘 정치가 극빈층의 조그만 표밭 대신 부자와 중산층의 광활한 표밭을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2012년 두 차례 선거를 치른 후에 ‘계층배반투표’라는 말이 나왔다. 빈곤층이 약자를 대변하는 진보 진영 후보 대신 보수 진영 후보를 지지한 것은 배신이며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논지였다. 과연 그런가? 과도한 복지는 부자와 중산층을 약자로 만들고 빈곤층과 같은 대우를 한다. 재정이 자유로이 늘어난다면 모르나 부자와 중산층을 지원 대상에 추가하면 빈곤층이 지원받는 절대 규모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원 무상급식 실시 후 빈곤층에 꼭 필요한 교육이 위축된 것이 그 증거다. 예산이 부족해 방과후 컴퓨터교실이 축소되고, 원어민 영어교사 채용이 줄어들어 빈곤층 학생이 설 땅이 더욱 좁아졌다. 중산층 이상 국민이 세금을 덜 내서 그렇다고 항변하지만 자본주의 경제에서 세금을 늘리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세금이 늘어난다 해도 중산층도 시혜 대상이 됨에 따라 빈곤층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문제는 치유되지 않는다. 한솥밥을 여럿이 나누면 한 사람당 몫이 줄어든다는 간단한 산수인데, 여럿이 나누는 측면의 밝은 점만 강조할 게 아니다. ‘계층배반투표’가 아니라 ‘계층분노투표’인 것이다.

선거전에서 수혜 대상이 넓은 복지공약을 내세우면 표를 얻기에 유리하다. 수혜가 늘어나는 중산층의 지지를 등에 업기 때문이다. 19세기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논평하면서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평등을 추구하면 국민들이 국가의존적으로 돼 아무 생각 없이 풀을 뜯는 가축 떼처럼 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정치인들이 모든 국민을 지원 대상에 포함하면 일하든 놀든 얻는 것은 비슷해진다. 결국 노력 없이 국가만 쳐다보는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위정자는 모든 국민이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할 책무가 있지만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재정이 뒷받침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복지를 추구해야 한다. 태국의 농민 시위 사태에서 보았듯이 재정상태를 무시한 선심 행정은 ‘잠시의 행복, 긴 불행’을 부른다. 둘째, 결과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을 위한 복지를 추구해야 한다. 결과의 평등은 경쟁을 없애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이 결과 국제 경쟁에서 탈락돼 경제도 망가진다. 셋째, 빈곤층을 배려하기 위한 복지가 돼야 한다. 부자와 중산층에 복지혜택을 주느라 예산이 부족해 빈곤층에 복지 사각지대가 생긴다면 기본부터 흔들리는 것이다.

포퓰리즘 정치는 멀쩡한 국민을 약자로 만들어 지원하고 진짜 약자는 낭떠러지로 몰아넣는다. 중산층은 건전한 가치관을 갖고 열심히 일하면서 국가 발전을 이끄는 기둥이다. 양식 있는 중산층 국민들이 결연히 일어나 포퓰리즘 정치에 맞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세금으로 걷어간 내 돈 돌려주면서 자기 돈 주듯 생색내지 말라” “나는 살 만하니 진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제대로 돌보라” “세금은 누가 내는데 무상 타령, 전원 지원 타령으로 빈곤층만 또 옥죄려 드는가?”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장·전 지식경제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