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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남성들 ‘암살 설계-여성 포섭-후방 지원’ 역할 분담한 듯

입력 | 2017-02-20 03:00:00

[김정남 피살]말레이 경찰 “北국적 8명 연루”




‘결국 배후는 북한이다.’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 사건을 수사해 온 말레이시아 경찰은 18일 첫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배후라고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이 내놓은 다양한 ‘증거’들은 북한 당국이 치밀하게 계획한 범행임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다.

우선 사건 관련자 11명 가운데 8명이 북한 국적자였다. 누르 라싯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부경찰청장은 기자회견 내내 “용의자들이 모두 북한 국적”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정찰총국 소속 등으로 추정되는 리재남(57), 오종길(55), 홍송학(34), 리지현(33)은 모두 사건 직전인 올해 1월 31일∼2월 7일 말레이시아로 입국했고, 김정남이 사망한 날 동시에 출국했다. ‘작전’ 개시 시점 약 1, 2주 전에 현지에 입국해 작전이 마무리된 직후 자취를 감추는 것도 전형적인 공작원들의 수법이다.

말레이시아 내 중국어 매체인 중국보에 따르면 이들 4명은 공항에서 김정남 피습 상황을 지켜본 뒤 옷을 갈아입고 출국했다. 싱가포르 채널뉴스아시아 등은 이들이 쿠알라룸푸르를 떠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17일 북한 평양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직접 북한으로 안 가고, 3개국을 거친 건 수사망을 따돌리려는 시도였다.

이에 따라 도주한 용의자 4명이 사건의 기획과 준비 및 지휘를 맡았고 검거된 리정철(47)은 이들의 숙박과 이동, 통신 등을 지원하는 현지 후방 지원, 베트남 국적 여성 도안티흐엉(29), 인도네시아 국적 여성 시티 아이샤(25) 등은 실행의 역할을 맡은 것으로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도주한 북한 남성 용의자 4명이 30대 초반 2명과 50대 중후반 2명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도 이들의 역할을 파악하는 단서가 된다.

한 탈북 인사는 “30대 남성 두 명은 외국인 여성들을 유인해 테러에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 김정남을 공격한 것은 흐엉과 아이샤였다. 현지 언론들은 동양인 남성이 흐엉을 3개월 전에, 아이샤를 1개월 전 포섭해 해외를 돌아다니며 범행 예행연습을 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해왔다.

두 여성을 ‘현장 작업조’로 선정한 배경으로는 젊은 한국 남성들이 ‘한류 문화’ 등의 여파로 동남아시아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다는 것을 이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외국어에 능숙하고, 호감을 살 수 있는 외모를 갖춘 젊은 남성들이 동원됐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30대 초반인 리지현과 홍송학이 여성 1명씩을 맡아 암살 작전에 끌어들였을 수 있다.

리재남과 오종길로 알려진 50대 남성 2명은 북한의 테러 베테랑일 가능성이 높다. 김정남 암살이란 대형 작전에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젊은 남성 공작원 2명만 투입하는 게 북한 당국으로서도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1987년 발생한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 때도 북한은 당시 20대였던 김현희와 70대 김승일을 한 팀으로 구성해 파견했다. 리재남과 오종길은 여성들과 직접 접촉하는 대신 뒤에서 동선을 치밀하게 짜는 등 테러 계획 및 설계자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리정철이 현지에서 독약 제조 등을 담당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으나 확인되지 않고 있다. 현재 행방이 파악되지 않고 있는 리지우(30)와 북한 남성 2명의 역할도 현재로선 추정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달아난 4명이 외교관 여권이 아닌 일반 여권을 소지했다는 것만 확인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이들을 전 세계에 지명 수배했으며 인터폴 등과 공조해 추적 작업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 당국이 거듭되는 북한 당국의 김정남 시신 인도 요구를 거절한 것도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북한 배후 관련 증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에 쏠릴 책임 추궁과 비판을 최대한 막아보려는 ‘증거인멸’ 의도가 명백한 상황에서 시신을 ‘가해자’ 측에 넘겨주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브라힘 부청장은 “(김정남의 시신은) 가족이나 친지들이 먼저 확인해야 하며 현지에 와서 인수해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세형 turtle@donga.com·윤완준·주성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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