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남 영화감독과의 불륜으로 번민하는 배우 영희의 모습을 그린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한 장면. 사진 출처 베를린영화제 홈페이지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애써 차분하게 무대에 오른 김민희는 “누군가에게는 이 영화가 가슴에 깊은 울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영화제에서 별처럼 빛나는 환희를 선물받았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수상 소감을 전했다. 벅찬 감정을 이기지 못해 말이 끊길 땐 자리를 가득 채운 청중이 연신 박수로 격려했다. 김민희는 “감독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수상의 공을 감독에게 돌리며 소감을 마무리했다.
앞서 16일 오후(현지 시간) 첫 공식 시사회 직후 외신들은 “영화에 김민희의 연기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미국 버라이어티지), “주연 배우 김민희는 관객을 깨어 있게 한다”(할리우드리포터)는 호평을 쏟아냈다. 여기에 현지 바이어와 배급사 등 영화 관계자 22명이 매긴 평점에서도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경쟁부문에 오른 작품 중 가장 높은 8.18점(10점 만점)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홍 감독의 작품이 어떤 식으로든 수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화의 해외 배급을 담당하는 화인컷의 김윤정 이사는 “현지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배우의 연기를 극찬했고, 이번 영화로 홍 감독의 영화에 빠져들게 됐다는 이도 적지 않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유부남 영화감독과의 불륜으로 번민하는 배우 영희의 모습을 그린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한 장면. 사진 출처 베를린영화제 홈페이지
논란 이후 두문불출하던 두 사람은 이번 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손을 잡는 등 거리낌 없이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손에는 커플 반지가 끼워져 있었고, 시상식 뒤 열린 기자회견장에는 김민희가 홍 감독의 양복 재킷을 걸치고 나오기도 했다. 홍 감독은 회견을 주재하는 사회자가 자신에게 마이크를 넘기려 하자 “이 회견은 그녀의 자리이다. 저는 그저 동석하고 있을 뿐”이라며 웃기도 했다.
외신들 역시 국내에서의 논란을 의식한 듯 기자회견에서 김민희에게 유부남 영화감독과 불륜의 사랑에 빠진 영희라는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나 연기 태도를 묻기도 했다. 이에 김민희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진짜 사랑을 찾으려는 모습이었다. 진실한 사랑을 원하는 모습을 잘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극 중엔 영희와 유부남 영화감독의 관계에 대한 세상의 시선에 강하게 반박하는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여러 군데 나온다. 이 때문에 홍 감독이 불륜 논란과 맞물려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로 대신 전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지인들과 술을 마시며 사랑에 대해 고민하던 영희가 “왜들 가만히 놔두질 않는 거야. 왜 난리들을 치는 거야”라고 말하거나, “난 이제 남자 외모 안 봐. 잘생긴 남자는 다 얼굴값 해. 나 진짜 많이 놀았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 다 해”라는 대사를 읊는 식이다. 또 영희의 선배는 영희를 두고 “자기들(비난하는 이들)은 그렇게 잔인한 짓들을 해 대면서 왜 그렇게들 난리를 치는 거야”라고 감싸기도 한다.
베를린 영화제에 참석한 영화진흥위원회 관계자는 “영화제 측에서 홍 감독이 세 번이나 경쟁부문에 진출한 것에 대해 줄곧 존중과 애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며 “이번 영화는 감독과 배우, 촬영감독과 스태프 2명이 전부일 정도로 작은 규모로 촬영됐고 영화제도 최소 인원만 참석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곰상은 헝가리의 한 도축장을 배경으로 독특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헝가리 여성감독 에네디 일디코의 ‘온 보디 앤드 솔’에 돌아갔다.
이 밖에도 한국 영화로는 문창용 전진 감독이 공동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앙뚜(Becoming Who I Was)’가 아동·청소년을 위한 성장 영화를 소개하는 ‘제너레이션 K플러스’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