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베이시스트 김성배 첫 무속 결합 앨범 ‘의례’
임희윤 기자
“흑… 흐흑… 흐윽….”
또다시 들려오는 귀신 소리. 하마터면 운전대를 놓칠 뻔했다. 차 안엔 자신뿐인데.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
“6개월간 이어졌어요. 머리에서 뭐가 돌고, 허깨비가 보이고, 가위에 눌리고, 헛것이 들리고. 영화 ‘곡성’을 봤더니 그 안에 제가 있더군요.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제가 자살 사이트에 접속하고 있었어요.”
김성배
올 4월, 국내 최초로 무속 재즈 음반이 나온다. LP레코드로 발매되는 김성배의 앨범 ‘의례(Ritual)’. 한국 재즈 연주자가 만든 최초의 무속 음악이다. 고대로부터 이어진 무속의식에서 김 씨는 재즈의 미래를 발견했다.
○ 교회음악 전공한 재즈 연주자, 굿에 빠지다
김 씨가 무속에 발을 디딘 것은 2014년 3월 인천 아트플랫폼 공연예술 부문 작가로 일하면서다. 대학에서 교회음악과 재즈를 전공한 그로서는 괴이한 행보가 시작됐다.
“인천 온 지 얼마 안 돼 김금화 만신(무녀를 높여 이르는 말)의 세월호 추모 굿 영상을 보게 됐어요. 만신이 빙의하는 걸 보고 젊은이들이 클럽에서 DJ와 함께 무아지경에 빠지는 장면이 떠올랐어요. 깨달았죠.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국악의 기법과 형식이 아니라 영적인 부분이라는 것을….”
인천과 경기 부천에 산재한 만신과 신딸들을 찾아다니며 자료 조사를 시작했다. 풍어제에도 갔다. 무녀가 돼지 목을 따고 작두를 타며 접신해 춤추는 광경을 10시간씩 지켜봤다.
○ 예술이 된 신내림, 귀신 소리
4월 발매될 한국 최초의 무속 재즈 음반 ‘의례’ 녹음 장면. 2015년 12월 12일 인천 아트플랫폼 무대는 신당처럼 꾸며졌다. 제물과 한옥을 형상화한 소품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왼쪽부터 이하윤, 셀린 바케, 김동원, 김성완, 김성배. 비트볼뮤직 제공
관객 30여 명 앞에서 시작된 공연이 1시간 넘게 이어졌다. 음산한 전자음향 위로 배음(倍音)과 미분음(微分音)을 오가는 콘트라베이스의 찰현이 끼어들고 시 낭송과 귀신 소리, 살풀이춤…. 굿의 형식에서 영향을 받아 사전 리허설도 없이 ‘영신-접신-공수-송신’의 네 부분으로 구성된 이 즉흥공연은 새 무대예술이었다.
“신당(神堂)의 공기는 제게 마치 전자 노이즈처럼 느껴져요. 신당에 들어갔을 때의 느낌을 소리의 스펙트럼으로 분석했어요. 몇 개의 미분음을 상상하고 뽑아내 음계를 만든 뒤 수제천(壽齊天)의 형식에 얹어 1부에 활용했죠.”
음반 ‘의례’는 이날 실황의 채록이다. 사실 의문의 질환에 시달리자 김성배는 음반 발매마저 포기했었다. “엔지니어에게 툭 던져놓고 녹음실에도 못 들어갔어요. 괴로워서 못 듣겠더라고요. 실은 아직도 녹음된 게 어떤지 안 들어봤어요.” 그는 춤꾼 바케가 지난해 5월 급성질환으로 사망한 뒤에야 그날의 기록을 반드시 앨범으로 남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김성배는 4월에 LP를 내면 풍어제를 겸해 음반 발매 기념 공연을 열고 싶다고 했다. 이번엔 진짜 만신을 불러 함께 한판 벌이고 싶단다. “만신들은 국악계에서 평생 무시를 당했대요. 다른 국악인들과 해외 공연을 가면 그들과 같은 방을 안 쓰려 하기도 했답니다.”
김 씨의 꿈은 두 가지다. 아직 숨이 붙은 우리의 굿들을 악보와 영상으로 기록하고, 동시대성을 가진 공연예술로 만들어 내놓는 것이다. “음악을 유행 타지 않는 예술로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예술가로서 끝까지 뚫고 나가야 하는 것이 있어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