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건 사회부장
그 65일 전 본보 2009년 3월 19일자 1면 톱기사의 제목은 ‘노 전 대통령, 박연차에 50억 받은 정황’이었다. 법조팀이 쓴 기사였고, 나는 법조팀장이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로 대검 중앙수사부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는 중단됐다. 그때까지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사람은 모두 21명. 당시 수사에 깊숙이 관여했던 인사를 최근 만났다. “박연차가 돈을 줬다고 진술한 정치인, 관료가 엄청나게 많았다. 수사가 계속됐다면 100명 넘게 구속됐을 것이다.”
절치부심한 그는 1년 뒤 검찰을 관장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들어갔다. 민정비서관이 됐고, 2015년 1월 민정수석으로 올라섰다. 한이 풀렸을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건이 터졌다. 2017년 2월 20일 우병우는 국정 농단을 묵인하고 은폐한 혐의로 구속될지 모를 상황에 처했다. 만약 그가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검사장 욕심을 죽이고 검찰을 훌훌 떠났다면 지금과 다른 처지가 되지 않았을까.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 혐의를 부인하는 말을 한마디도 남기지 않았다. 다만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고 적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과 ‘고통받는 여러 사람’의 삶을 맞바꿨다.
그렇게 살아난 사람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전 대표, ‘노무현의 적자’ 안희정 지사다. 만약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구속됐다면,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면 문 전 대표와 안 지사가 지지율 1, 2위의 대선 후보가 됐을까. 두 후보가 경쟁적으로 ‘노무현 정신 계승’을 외치며 노 전 대통령을 살려 냈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적 죽음’, 탄핵을 거부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을 기대한다. 하지만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결론은 별로 다르지 않다. 탄핵이 인용되면 박 대통령만 죽는 게 아니다. ‘박근혜의 친구’, ‘박근혜의 적자’까지 어쩌면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탄핵이 기각돼도 등 돌린 국민 다수가 다시 돌아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비틀대는 ‘좀비 정권’의 수장이 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마저도 새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9개월 시한부다. 그리고 2개월 뒤 퇴임하면 검찰의 강제 수사에 직면할 것이다.
이명건 사회부장 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