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탄핵前 하야’ 재점화]‘하야→ 탄핵각하’ 실현 가능할까
이런 이유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바른정당도 21일 자진사퇴론을 언급하고 나섰다. 하지만 자진사퇴론이 현실화되려면 복잡한 함수를 풀어야 한다.
○ ‘하야 선언’을 위한 조건들
당장 박 대통령이 탄핵심판 결정 전 하야 선언을 하면 탄핵심판이 중단될지도 불분명하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캠프의 총괄본부장인 송영길 의원은 이날 “박 대통령이 하야하더라도 중대한 헌법 위반에 대해 다음 대통령에게 경각심을 주고, 국민에게 어떤 것이 헌법적 가치인지 선언하는 의미에서 탄핵심판 결정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재 헌법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는 “하야 시 탄핵심판을 계속할 수 있느냐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며 “현실적으로 각하할 확률이 90% 이상이라고 보지만 재판관 중 일부가 중대한 법률 위반을 명확하게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끝을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야론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을 눈앞에 두고 하야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 모델이다. 당시 닉슨 전 대통령은 자신의 밑에서 부통령을 지낸 후임 제럴드 포드 대통령에 의해 사면 받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하야든 탄핵 인용이든 대통령 지위를 잃는 순간 자연인으로 돌아가 오히려 강제 수사를 받고 구속될 수 있다.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사면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강제로 끌려나오기보다 스스로 내려오는 것을 택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파면되면 경호를 제외하곤 전직 대통령 예우를 일절 받지 못한다. 자진사퇴를 선택하더라도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전직 대통령 예우는 박탈된다. 결국 사법 처리 수위가 하야 선택의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
탄핵심판 결정 이후 밀려올 엄청난 후폭풍은 정치권의 자업자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야권은 촛불집회 총동원령을 내렸고 여권은 태극기집회에서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극한 대결을 부추겼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 임기(3월 13일)에 맞춘 탄핵심판 결정은 재판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결과를 수용하자면서도 탄핵 인용은 안 된다는 모순적 태도다.
반면 국정 농단 사건 초기 박 대통령은 임기 단축 수용 의사를 밝혀 ‘질서 있는 퇴진’의 문을 열었지만 그 문을 걸어 잠근 것은 야권이었다. 하야론이 탄력을 받으려면 이번엔 야권이 그 문을 열어줘야 한다. 자신의 지지층을 상대로 박 대통령 사면을 통한 국민대통합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탄핵 인용으로 조기 대선이 확정되면 야권 주자가 지지층 이탈을 가져올 수 있는 박 대통령 사면을 주장하긴 쉽지 않다. 대선까지 두 달간 극심한 사회 혼란이 불가피한 셈이다.
다만 여권 핵심 관계자는 “야권도 탄핵 인용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탄핵 인용 뒤 보수층의 결집도 결집이지만 야권이 집권한다 해도 보수층은 ‘잘못된 탄핵으로 인한 정권 탈취’로 보고 새 정부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선 국면에서 야권 후보의 승리가 유력해지면 ‘보수층 끌어안기’에 나설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탄핵 기각 뒤 박 대통령이 자진사퇴를 선언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라는 말도 나온다. 여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탄핵이 기각돼도 박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 힘든 만큼 하야를 선언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다만 여권의 전열 정비를 위해서라도 당장 사퇴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