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성조기는 영원, 로맨스는 안녕

입력 | 2017-02-22 03:00:00

2017년 2월 21일 화요일 맑음. 성조기는 영원,
로맨스는 안녕. #240 Ozzy Osbourne ‘Good bye to Romance’(1980년)




오지 오즈번의 1987년 라이브 앨범 ‘Tribute’ 표지.

며칠 전 저녁, 마포구 주택가의 조그만 밥집. 음악 관계자들과 동그란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3000원짜리 멸치국수 가락을 끌어올려 후후 불던 그가 문득 입을 뗐다. “이게 다 오지 오즈번 때문이잖아.”

음악 좋아하는 출판사 대표 A 씨. 그가 15년째 연애를 안(못) 하는 이유를 밝힌 것이다. 얘기는 이렇다.

2002년 2월 22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영국 로커 오지 오즈번의 첫 내한공연에 그는 연인과 함께 갔다. 공연 중반, 일이 났다. 기타리스트 잭 와일드가 미국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The Star-Spangled Banner)’를 연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느 때 같으면 명연주자의 의외의 변주에 환호가 쏟아졌겠지만 이날만큼은 객석이 찬물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미선이 효순이 사건’으로 반미 감정이 극에 달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썰렁해진 분위기를 못 이기고 A의 연인은 화장실로 향했다. 착잡했던 걸까. 1년 전 A에게 ‘끊었다’고 호언했던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왔다. 그게 화근이었다. A 씨는 ‘성조기여…’에 이어 나온 발라드 ‘Goodbye to Romance’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참지 못해 아주 오랜만에 연인과 입맞춤을 시도했던 것이다. 이별의 쓴맛. 말 그대로 ‘로맨스여 안녕’이 된 슬픈 발라드에 관한 이야기다.

기억은 늘 얼마간 왜곡된다. 문헌에 따르면 그날 오지 오즈번은 결코 ‘Goodbye to Romance’를 연주하지 않았다. 그때 ‘성조기여 영원하라’ 다음으로 연주된 곡은, 이 역시 제목부터 비장한 다른 곡. 며칠 뒤 A 씨에게 전화해 따졌다. ‘Goodbye to Romance’는 그날 안 부른 걸로 돼 있는데요? 그의 덤덤한 대답이 더 슬펐다.

“노래야 뭐든 상관있었겠나. 내 마음이 ‘Goodbye to Romance’였나 보지.”

다가올 새봄엔 A 씨의 연애사에 15년 만에 새순이 자라났으면 좋겠다. 오지 오즈번이 ‘성조기여 영원하라’에 이어 부른 그 노래처럼. ‘No More Tears.’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