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 때 기축옥사, 피비린내 나는 당쟁의 원인 특검수사 무리한 측면 많아 당한 쪽에 보복심리 불러 불행한 역사 반복 않으려면 ‘박영수 특검’ 연장 안 된다
송평인 논설위원
정유라 입시부정이 드러났을 때 모두 최순실이 정권을 움직여 개입한 것처럼 흥분했다. 그러나 그 일로 어떤 교육부 관계자도 처벌되지 않았다. 교육부만이 아니라 어떤 정부 관계자도 처벌받지 않았다. 박영수 특검은 문화체육관광부의 김종 전 차관이 당시 김경숙 체육대학 교수에게 부탁전화를 했다고 하면서도 김 전 차관에게 업무방해죄를 적용하지 않았다. 자신이 없어서일 것이다. 정유라 입시부정은 최 씨와 학교 측 사이의 일로 일단락되고 있다.
특검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고위관료 5명을 구속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은 2015년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터뜨려 언론에 대서특필된 것이다. 그때는 아무도 수사하라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비판할 실정(失政)이지 수사할 범죄라고 여기지 않았다. 김기춘은 잡아넣어야 하겠고 뒤지다 뒤지다 걸리는 게 없으니까 특검이 찾아낸 것이 블랙리스트다.
특검은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우 전 수석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구속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뭘로 구속하는지는 관심도 가지 않는다. 처음 우 전 수석 처가와 넥슨의 서울 강남 빌딩 매매 의혹에서 시작해 가족기업 정강의 횡령, 아들의 의경 꽃보직 혜택 등으로 번지더니 정윤회 문건 수사 축소 압력 의혹까지 나왔다. 이런 의혹은 이제 온데간데없고 무슨 말인지 기억에도 남지 않을 온갖 직권남용 혐의만 난무한다.
특검의 지상목표는 말할 것도 없이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 입증이다. 국회에서 야당이 입증도 되지 않은 뇌물죄를 입도선매 식으로 포함해 탄핵 소추하는 바람에 그 근거를 기필코 마련하는 것이 특검에 주어진 지상목표가 됐다.
특검은 영장 재청구 끝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한 것으로 존재 이유를 입증한 것처럼 보이지만 글쎄 그럴까. 법원의 영장 발부 사유를 보고 어떤 언론은 추가된 국외재산도피와 범죄수익 은닉 혐의가 결정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어떤 언론은 새로 증거를 보강한 뇌물죄 혐의를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뇌물죄 인정 여부가 초미의 관심인 상황에서 이런 엇갈린 해석이 나오는 영장을 발부한 판사는 용감한 것도 뭐도 아니고 무책임하다.
기업이 100만 원, 1000만 원도 허투루 쓰지 않는데 430억 원이 넘는 돈을 썼다면 뇌물로 보지 않는 게 이상하다. 그러나 뇌물인지 여부도 사회적 관행을 무시할 수 없다. 보수주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영국 최초의 인도 총독이었던 워런 헤이스팅스를 탄핵 소추했다. 영국에 앉아 인도를 보는 버크의 눈에 헤이스팅스가 인도 부족들로부터 받은 것은 다 뇌물이었지만 인도의 관행에 따르면 그것은 선물이었을 뿐이다. 헤이스팅스의 탄핵은 기각됐다.
조선 선조 때 기축옥사(己丑獄事)라고 있다. 서인이 동인을 정여립 반란에 연루시켜 가족들까지 수백 명을 처형한 사건이다. 동인의 영수 이발 등 많은 관료가 정여립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하게 처형됐다. 기축옥사는 이후 서인과 동인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당쟁을 몰고 왔다. 특검의 정유옥사도 더 무리하면 나중에 당한 쪽이 재집권해 또 어떤 보복을 하겠다고 나설지 모른다. 특검 연장 안 된다. 이제 됐다. 그만해라.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