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해 논설위원
노무현 시절 머리 맞댄 인연
승승장구한 그에게도 뼈저린 아픔이 있었다. YS 정부에서 수산청장을 끝으로 해운산업연구원 연구자문위원이라는 한직으로 밀렸을 당시 ‘이젠 공직 생활의 끝이구나’라고 생각한 그는 고요한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던 도중 “빠져 죽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43년 공직생활 중 해보지 못한 주요 공직은 딱 하나, 총리였다. 노무현 정부에서 가능성도 없지 않았지만 이해찬, 한덕수로 나이가 내려가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전윤철이 문재인 캠프로 갈 때 말리는 공직 후배들이 많았다. 호남을 대표하는 관료로서 상징적 존재인 전윤철이 굳이 정치판의 전면에 나설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전윤철은 지난해 4·13총선에서 안철수 의원이 이끄는 국민의당에서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아 공천 칼자루를 휘두르기도 했다. 국민의당이 원내 3당으로 도약한 데는 전윤철의 공도 작지 않았을 것이다. 안철수의 정적이나 다름없는 문재인 캠프로 옮긴 데 대해 “나는 국민의당 당적을 갖지는 않았다”고 했지만 국민의당 주변에선 “당에서 제대로 대접하지 않아 섭섭했던 게 아니냐”는 뒷말도 들린다.
문재인은 15일 여수에서 “총리부터 시작해 인사도 확실히 탕평 위주로 해서 ‘호남 홀대’가 없도록 하겠다”며 호남 총리 기용을 약속했다. 호남 표를 끌어모으기 위해 호남 총리를 앞세우는 탕평인사로 지역 통합을 이루겠다는 정치공학 셈법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당 안팎에선 공동선대위원장에 제일 먼저 영입한 전윤철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돈다. 문재인은 지난해 총선 때 “호남이 지지를 거둔다면 정치에서 은퇴하고 대선에 불출마하겠다”고 배수진을 쳤지만 ‘빈말’이 된 전력을 갖고 있다.
‘호남 총리’도 빈말이라면?
전윤철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가 나온 뒤 선거 캠프가 제대로 갖춰지면 ‘원로로서의 역할’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는 “정치교체, 세대교체 등 레토릭(수사)이 많지만 정권교체가 목표라면 호남은 전략적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에 대해선 “성품이 착한 사람”이라며 “대선 재수(再修)를 하면서 국가비전과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것 같다”고 평가한다. DJ 정부에서 “대차대조표도 못 읽는 사람을 감사로 갖다 놨다”며 공기업의 낙하산 인사를 대놓고 비판하고, 노무현 정부에선 감사원을 회계감사에서 정책감사로 방향을 바꿔 관가의 공직 기강을 다잡은 ‘핏대 선생’이 전윤철이다. 그가 정치권에 발을 담근 진정성을 보여주려면 “나는 어떤 자리에도 욕심이 없다”고 먼저 얘기한 뒤에 원로의 역할을 찾는 게 순서일 것 같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