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유명한 독살자는 로마제국 네로 황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가 아닐까. 남편을 독살한 그는 아들을 황제로 만들려는 야망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은 모두 제거했다. 작은아버지인 클라우디우스 황제와 결혼하려고 황후를 죽였고, 황제의 친아들 브리타니쿠스를 독살하고 나중엔 클라우디우스마저 독살했다. 그가 쓴 독약이 비소다. 살짝 단맛이 나는 비소는 음식에 섞기 좋고 소량으로는 죽지 않기 때문에 조금씩 먹여 자연사로 꾸미기에 그만이다. 비소는 임금이 내리는 사약의 주성분이기도 했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도 정적이나 반대자를 제거하는 데 독을 사용했다. 국가안보 책임자 시절엔 종교 지도자와 국외 반체제 인사 수십 명을 독살했는데 그가 애용하던 독은 황산탈륨이었다. 탈륨은 물에 잘 녹고 아무 맛도 안 나며 치사량을 먹어도 증상은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 러시아는 방사성물질까지 쓴다. 2006년 영국에서 복통을 호소하다가 숨진 전직 러시아 비밀경찰의 소변에선 ‘폴로늄 210’이 나왔다.
▷독살이 다른 타살과 다른 점은 자연사로 위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거에 독약은 구하기도 쉬웠고 음식이나 음료에 살짝 섞기만 하면 될 뿐 아니라 일단 몸속으로 들어가면 증거를 찾기 힘들어 살인 행위를 감출 수 있었다. 독약의 별명이 ‘살인자의 친구’인 까닭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독살됐지만 이를 입증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독살의 시대는 끝나 간다. 현재는 일반인이 독약을 구하기도 어렵고 부검으로 쉽게 밝혀진다.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당한 김정남을 보면 그는 독극물 공격을 당한 뒤에도 공항정보센터로 걸어가고 공항 직원을 따라 의무실로 향하는 등 2분 30초가량 말짱한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피습에서 사망까지 30분이 걸렸고 부검 결과 아직 약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북측은 여권명 ‘김철’이 자연사했다고 주장한다. 김정남을 죽인 것이 시간을 두고 작동하고 체내에 성분이 남지 않는 신종 독성물질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진화하는 독약은 과학문명의 어두운 그림자 같아 씁쓸하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