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정성은 프리랜서 VJ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거다. 요즘 들어 많이 보이는 인형뽑기방. 처음엔 나도 누가 이런 걸 하나 싶었다. 오락을 좋아하지 않아 그 흔한 애니팡 한 번 해본 적 없고 요행을 바라는 걸 즐기지 않아 로또 한 번 사본 적 없는 나였다. 그랬던 내가 인형뽑기에 중독된 걸까. 올 1월 31일, 세뱃돈으로 받은 현금이 주머니에 있었던 게 발단이었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혼자 집으로 가는데 저 멀리 하얀 불빛 아래서 환호성이 들렸다. 새로 생긴 인형뽑기방이었다. ‘어라? 저게 진짜 뽑히기도 하나 보네’ 하며 호기심이 생겼다. 평소 ‘난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이 많았는데 저들을 보니 왠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옆집 사는 희철이도 요즘 들어 프로필 사진이 인형으로 바뀌는 걸 보니 여기서 했나 보다. 나도 해 봐야지. 그렇게 부푼 꿈을 안고 10분 만에 1만5000원을 날렸다.
그가 가르쳐준 비법은 우선 입구 부근에 인형이 쌓여 있는 기계만 시도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 하는 사람들은 입구 바로 옆에 있는 인형부터 시도하곤 하는데 걔들은 잘 안 된다고. 이건 뽑기방 사장님에게서 들은 말인데 입구 근처에 있는 인형을 할 때와 입구 멀리에 있는 인형을 할 때와는 집게 힘이 다르다고 한다. 따라서 입구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고 들기 쉽게 누워 있는 애들을 공략해야 한다. 걔들은 어지간하면 입구 탑(인형들이 탑처럼 쌓여 있다고 해서 탑이라 부른다)까지는 가져다 놓는데 그럼 게임은 끝난 거다. 그렇게 탑 위에 놓인 인형들을 입구 쪽으로 살살 끌고 가서 톡 떨어뜨리거나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 입구에서 먼 쪽을 잡고 뒤집어 올려 입구로 골인시키는 거다.
솔직히 이걸 카톡으로 설명해줄 때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다음 날 정말 우연히 길에 있는 인형뽑기 기계 앞을 지나는데 어라? 왠지 어제 친구가 설명한 그 상황이 눈앞에 있었다. 누군가가 탑 위에까지 올렸다가 돈이 없어서 더 안 하고 그냥 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봤는데 이럴 수가! 인형이 너무나 부드럽게 입구로 쏙 떨어져서 나에게로 온 것이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심장박동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나에게도 생기는구나! 그날 눈이 뒤집힌 거지…. 대체 왜 한 걸까 싶으면서도 이 정도의 중독력이라면 뭐라도 해볼 수 있겠다 하는 희망이 생겼다.
그렇게 해서 한 달 동안 뽑은 인형은 자그마치 22개. 이 정도면 강원랜드 한 번 갔다 온 걸로 쳐야 할까. 다행인지, 아쉬운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그 열렬한 마음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질릴 때까지 해야 그만둘 수 있다는 지인의 조언을 듣고 7만 원으로 인형 8개를 뽑고 나니 정말 마법처럼 그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몇 번 하기는 했지만….
올 듯 말 듯하지만 결국 나에게 와 줄 때의 그 행복감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선사해준 인형뽑기에게 진실로 고마움을 느끼며 이제 안녕이야! 난 이제 더 강한 자극을 찾아 떠날 테야! 그동안 내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정성은 프리랜서 V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