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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이건혁]101년 걸린다는 남녀 임금 격차 해소

입력 | 2017-02-23 03:00:00


이건혁 경제부 기자

A대학의 외국인 교수 B 씨는 졸업을 앞둔 여성 제자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 어느 나라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학생들이지만 한국 취업시장에서는 늘 찬밥 신세다. 그나마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이 여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해주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B 씨는 “한국 기업들이 우수한 여성 인재를 외국 기업에 뺏기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꼴찌를 차지한 항목이 하나 더 추가됐다. 이번에는 남녀 간 임금 격차다. 글로벌 컨설팅사 PwC와 삼일회계법인은 OECD 회원국 35개 중 터키와 라트비아를 제외한 33개 국가의 여성 경제활동지수를 매년 발표한다. 남녀 간 임금 격차, 여성의 노동참여율, 남녀 간 노동참여율 차이, 여성 실업률, 정규직 근로자 중 여성 비율을 조사해 지수를 만든다.

최근 발표된 이 조사 결과에서 한국의 남녀 간 임금 격차가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로 나타났다. 남녀 간 격차는 무려 36%. 남성이 100만 원을 벌 때 여성의 임금은 이보다 36%가 적다는 뜻이다. 32위인 에스토니아(29%)보다 7%포인트 높고, 조사 대상 평균인 16%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다. 한국에서 남녀 간 임금 격차가 없어지려면 101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2118년이나 돼야 남녀 임금 평등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덕분에 한국의 여성 경제활동지수는 100점 만점에 37.3점을 받았다. 33개국 중 32위다. 이번 조사에서 아이슬란드가 77.6점을 받아 여성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하고 평등하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보다 여성 경제활동이 저조한 것으로 평가받은 국가는 멕시코가 유일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양성 평등 수준이 세계 최하위에 머무는 이유로 제도의 문제를 가장 먼저 꼽는다. 여성이 마음 놓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제도, 특히 육아와 관련된 제도들이 아직도 보완할 게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여성의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이를 통해 양성 평등을 정착시키겠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양성 평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기도 한다. 얼마 전 만난 국내 한 증권사 관계자에게 회사 내 양성 평등 수준을 물었더니 ‘아주 잘되고 있다’는 모범 답안이 돌아왔다. 육아휴직 보장 기간이 짧아 여성 근로자들이 불안해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자기 경력과 고객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육아휴직을 자발적으로 단축하고 있다”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한국이 남녀 간 임금 격차에서 2000년 PwC 조사부터 줄곧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는 건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끌 노동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들은 남성과 동등한 급여와 인사평가, 안정적인 육아환경 등을 보장하며 뛰어난 여성 인재들을 영입하고 있다. 선진국 중 꼴찌 수준의 양성 평등으로는 우수 여성 인재를 영입할 수도, 한국을 떠나려는 이들을 붙잡을 수도 없다. 양성 평등의 확대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B 교수의 조언을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이건혁 경제부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