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첫 반응 “남조선의 각본에 따른 것”…관련성 전면 부인 말레이시아 장관 “북한은 깡패국가” 비판 로이터 “강철 북한 대사를 추방하거나 북한 대사관 폐쇄 검토 중”
북한이 23일 김정남 사망 열흘 만에 내놓은 첫 공식 반응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발생한 김정남 독살 사건과의 관련성을 전면 부인했다. 이에 말레이시아 장관이 북한을 ‘깡패국가’(rogue nation)라고 맹비난하는 등 양국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조선법률가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이번 사건이 “남조선의 각본에 따른 것”이라고 강변했다. 담화는 김정남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공화국 공민’으로 지칭했다. 담화는 특히 “13일 말레이시아에서 외교 여권 소지자인 우리 공화국 공민이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갑자기 쇼크 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이송되던 도중 사망한 것은 뜻밖의 불상사가 아닐 수 없다”며 자신들이 독살한 것이 아니라 자연사라고 주장했다.
이어 “사망자가 외교여권 소지자로서 빈 협약에 따라 치외법권 대상이므로 절대로 부검을 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말레이시아 측은 부검을 강행했다”며 “자주권에 대한 노골적인 침해이고 인권에 대한 난폭한 유린이며 인륜도덕에도 어긋나는 반인륜적인 행위”라고 말레이시아를 비난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김정남 암살 사건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를 추방하거나 북한 대사관을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로이터통신이 23일 말레이시아 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앞서 강철 대사는 20일 기자회견에서 “수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말레이시아 정부를 비난했었다.
다툭 세리 히사무딘 후세인 말레이시아 국방장관도 이날 “어떤 범죄든 발생한 국가의 법에 따라 조사돼야 한다”며 “이번 사건과 관련해 북한 대사가 도를 넘어섰다는 의견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정남 암살 사건의 핵심 용의자로 지목된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 현광성이 사건 당일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북한 국적 용의자 4명을 배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싱가포르 방송인 ‘채널뉴스아시아’는 말레이시아 경찰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현광성의 배웅 장면이 공항 폐쇄회로(CC)TV에 잡혔다며 또 다른 용의자인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도 함께 있었다고 전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현광성과 김욱일이 치외법권 지역인 북한대사관 안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고, 북한 측에 이들을 넘겨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 외교관인 현광성은 김정남 암살을 현장에서 지휘 감독하고 이를 북한대사에게 보고하는 등 핵심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은 말레이시아 수사의 신뢰성을 부정하며 일절 협조하지 않고 있다. 현광성의 경우 북한이 외교관 면책특권을 내세울 경우 말레이시아 당국이 조사할 방법도 사실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칼리드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면책특권을 지닌 현광성에 대해선 체포영장을 발부하지 않을 것을 시사했다. 하지만 면책특권이 없는 김욱일에 대해선 “법적처리할 방침”이라고 말해 체포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을 내비쳤다.
주성하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