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키 구니오의 ‘정년 후의 한국 드라마’
지난해 말 출간된 ‘정년 후의 한국 드라마’(사진)는 출판사에서 30년 넘게 일하다 정년퇴임한 베테랑 출판인 후지와키 구니오(藤脇邦夫) 씨가 자신의 시청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드라마의 매력을 분석한 책이다.
사실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 팬은 주로 중장년 여성층이다. 2003년 일본에 상륙한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대장금, 이산 등이 히트하면서 한창때는 ‘한국 드라마에 빠진 주부들이 저녁을 차려 주지 않아 남편들이 불만’이라는 뉴스가 나왔을 정도다.
그는 2000년대 초 ‘쉬리’ 등 일부 한국 영화가 일본에 소개된 것을 계기로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일하던 출판사에서 영화잡지 ‘스크린’ 일본어판도 냈다. 영화에서 느낀 정취를 더 오래 음미하고 싶던 차에 ‘겨울연가’를 만났고 이후 한국 드라마에 본격적으로 빠졌다. 지금까지 15년 동안 한국 드라마 약 500편을 봤다.
그는 한국 드라마의 매력으로 먼저 ‘세계적인 수준의 시나리오’를 꼽았다. 회당 40분 전후, 한 편이 10∼13부작인 일본과 달리 한국은 회당 60분 전후, 16∼24부작이 주류다. 그런 만큼 탄탄한 시나리오가 중요하고, 실력 있는 시나리오 작가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본과 달리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많다는 점도 뛰어난 시나리오 작가 배출의 토양이 됐다는 분석이다.
두꺼운 연기자 층도 한국 드라마의 강점으로 언급한다. 일본에서는 2000년대 이후 단카이 세대(1947∼1949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가 즐길 수 있는 가족 드라마가 사라졌고, 이에 따라 더 이상 세대별 연기자가 폭넓게 배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 드라마에는 여전히 가족 드라마의 요소가 강하게 남아 있고 ‘식탁 장면’이 빠지지 않는다. 그런 만큼 세대별로 다양한 배우들이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그는 “한국 드라마가 최근 2∼3년 사이에 과거의 재벌 신데렐라 스토리에서 탈피해 남성 취향의 서스펜스적 요소가 강화되고 있다”고 소개한다. 최근 한국에서 이슈가 된 ‘미생’과 ‘응답하라’ 시리즈에 대한 언급도 빠지지 않는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