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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의 히트&런]‘엿가락’ 프로야구, 20초 ‘투구 시계’ 어떨까

입력 | 2017-02-24 03:00:00


2년 전 KIA 김기태 감독은 본의 아니게 해외 진출(?)을 했다. ‘김기태 시프트’라 부를 수 있는 기상천외한 수비 작전 때문이었다. 그해 5월 13일 kt와의 경기 9회 2사 2, 3루에서 김 감독은 3루수 이범호를 포수 뒤로 보냈다. 투수 심동섭이 고의사구를 던지다 폭투를 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야구 규칙에는 ‘인플레이 상황에서 포수를 제외한 모든 야수는 페어 지역에 있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 일은 이튿날 ‘해외 토픽’으로 야구 본고장 미국 언론에 크게 소개됐다.

하지만 올해부터 이렇게 ‘창의적인’ 작전은 생각도 할 수 없게 됐다. 올해부터 메이저리그에서는 고의사구 사인을 냈을 경우 투수가 실제로 공을 던지지 않아도 타자가 자동 출루하는 규정이 시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 나름대로 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고의사구를 없앤 이유는 빠른 경기 진행을 위해서다. 고의사구 시 자동 출루가 경기 시간 단축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단 1초라도 경기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게 롭 맨프레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의 의지다. “스피드 업에 사활을 걸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9이닝인 야구 경기를 7이닝으로 줄이자는 극단적인 의견도 나오고 있다.

우리 기준으로는 메이저리그 상황이 그리 심각해 보이진 않는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의 경기당 평균 소요 시간은 3시간 4분이었다. KBO리그 10개 팀 가운데 가장 경기 시간이 짧았던 SK(3시간 16분)보다 짧다. 2015년의 3시간에 비해 고작 4분 늘었을 뿐이다. 이에 비해 KBO리그의 경기당 평균 시간은 3시간 25분으로 역대 두 번째로 길었다(최고는 2014년의 3시간 27분).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현 상황을 심각한 위기로 판단하고 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30개 구장을 찾은 관중은 모두 7311만9044명(경기당 3만169명)이나 된다. 흥행 면으로 보면 성공이라 할 수 있지만 야구를 지루한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고의사구 사인 때 자동 출루는 스피드 업의 맛보기에 불과하다. 이르면 내년부터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선수노조와의 협의를 통해 20초 투구 시계 도입, 스트라이크 존 넓히기, 챌린지(합의 판정) 시간 축소 등을 차례차례 도입할 계획이다.

미국 프로야구 마이너리그 팀 더럼 불스 안방구장에 설치된 20초 시계. 더럼=이헌재 기자

이 가운데 20초 투구 시계는 KBO리그에 꼭 들여왔으면 하는 제도다. 그만큼 효과가 확실하다. 투수는 포수로부터 공을 받은 뒤 20초 안에 공을 던져야 한다. 경기장 곳곳에 설치된 대형 시계에서 초를 잰다. 마치 농구 경기에서 골대 위에 설치된 시계가 공격 제한 시간(24초)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를 어기면 볼이 선언된다. 마이너리그는 2년 전부터 투구 시계를 도입했는데 경기당 평균 시간이 12분이나 줄었다.

지난해 찾은 트리플A 경기장에서 체감한 ‘20초 투구 시계’는 경기 보는 맛을 배가시켰다. 투수들은 포수와 사인을 교환한 뒤 곧바로 공을 던졌다. 배터리가 빨리 움직이니 타자도 빨리 타석에 들어섰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야구의 정통성이 훼손된다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았다.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스피드 업에 대해 “시간을 줄이는 게 아니라 빠른 페이스를 유지하고, 액션을 늘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 쓸데없는 시간은 줄이고, 빠른 플레이를 통해 긴장감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100% 공감한다. 4시간, 5시간이면 어떠랴. 공 하나하나에 재미와 긴장을 느낄 수 있다면야.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