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KIA 김기태 감독은 본의 아니게 해외 진출(?)을 했다. ‘김기태 시프트’라 부를 수 있는 기상천외한 수비 작전 때문이었다. 그해 5월 13일 kt와의 경기 9회 2사 2, 3루에서 김 감독은 3루수 이범호를 포수 뒤로 보냈다. 투수 심동섭이 고의사구를 던지다 폭투를 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야구 규칙에는 ‘인플레이 상황에서 포수를 제외한 모든 야수는 페어 지역에 있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 일은 이튿날 ‘해외 토픽’으로 야구 본고장 미국 언론에 크게 소개됐다.
하지만 올해부터 이렇게 ‘창의적인’ 작전은 생각도 할 수 없게 됐다. 올해부터 메이저리그에서는 고의사구 사인을 냈을 경우 투수가 실제로 공을 던지지 않아도 타자가 자동 출루하는 규정이 시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 나름대로 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고의사구를 없앤 이유는 빠른 경기 진행을 위해서다. 고의사구 시 자동 출루가 경기 시간 단축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단 1초라도 경기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게 롭 맨프레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의 의지다. “스피드 업에 사활을 걸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9이닝인 야구 경기를 7이닝으로 줄이자는 극단적인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현 상황을 심각한 위기로 판단하고 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30개 구장을 찾은 관중은 모두 7311만9044명(경기당 3만169명)이나 된다. 흥행 면으로 보면 성공이라 할 수 있지만 야구를 지루한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고의사구 사인 때 자동 출루는 스피드 업의 맛보기에 불과하다. 이르면 내년부터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선수노조와의 협의를 통해 20초 투구 시계 도입, 스트라이크 존 넓히기, 챌린지(합의 판정) 시간 축소 등을 차례차례 도입할 계획이다.
미국 프로야구 마이너리그 팀 더럼 불스 안방구장에 설치된 20초 시계. 더럼=이헌재 기자
지난해 찾은 트리플A 경기장에서 체감한 ‘20초 투구 시계’는 경기 보는 맛을 배가시켰다. 투수들은 포수와 사인을 교환한 뒤 곧바로 공을 던졌다. 배터리가 빨리 움직이니 타자도 빨리 타석에 들어섰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야구의 정통성이 훼손된다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았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