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심판과 언론보도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20일 본사 회의실에서 ‘대통령 탄핵 심판과 언론보도’를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이진녕 미디어연구소장, 강무성 조화순 위원, 이진강 위원장, 신용묵 안민호 김광현 위원.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진강 위원장=국회의 탄핵 의결 이전에는 동아일보가 주도적으로 나서 나라를 정상화하기 위해선 탄핵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탄핵 절차가 진행되면서 어떤 보도가 나왔는지 살펴보고, 앞으로 바람직한 보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논의해 보겠습니다. 편집국의 보도 방향은 어떠했습니까.
김광현 위원=탄핵과 관련해 본보는 ‘법치’를 견지했습니다. 최근 게재한 ‘촛불 이후의 한국 사회를 말한다’ 시리즈도 처음부터 법치주의를 따라야 한다고 제시했습니다. 집회 관련 보도에 불만의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장 기자의 시각에서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게 원칙이었습니다. 초기엔 촛불집회 참가자가 많았기 때문에 그대로 보도했고, 최근 보수집회 참가자가 느는 현상에 대해서도 그대로 전하고 있습니다.
이 위원장=당초에 헌법 질서에 따라 ‘탄핵이 길이다’라고 했던 동아일보가 탄핵 의결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독자와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고 객관적으로 보도했는지를 살펴 볼 때 약간 소극적이었고 뭔가 맥을 잘못 잡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조화순 위원=탄핵 관련 기사를 경쟁지와 비교해 볼 때, 동아는 인용구를 헤드라인으로 잡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 특징입니다. 대통령 변호인이 한 말이라든가, 집회를 주관하는 측에서 나온 얘기를 키워드로 잡아 그날그날의 현상을 전했다고 봅니다. 촛불 이후의 한국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기획기사는 법치주의에 기반을 둔 정치질서를 조망한 것으로 봅니다. 아쉬웠던 점은, 탄핵 관련 내용을 독자가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칼럼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안민호 위원=최근 탄핵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기획 기사 중 2월 7일자 ‘촛불에 반대하는 노년층 불만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는 인터뷰 내용은 언론이 놓치고 있는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했습니다.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 간의 간극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탄핵 문제를 넘어서 한국 사회가 해결하고 관심 둬야 할 문제로 적절히 다뤘다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건 시리즈를 담아내는 형식이 각기 달랐다는 것입니다. 분량도 일정치 않았습니다. 상품 가치를 높이려면 규격과 분량을 맞추고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획 기사에 나온 외부 필진 견해를 이후 지면 제작에 반영하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강무성 위원=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되면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데, 차기 대통령이 누구냐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최근 동아에 실린 칼럼과 사설의 내용을 살펴보면 대선주자에 따라 호불호에서 다소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조 위원=전에는 보수신문, 진보신문의 구분이 잘 됐는데 요즘은 뚜렷하지 않아 헷갈리는 독자들도 있을 겁니다. 언론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게 결과적으로 확고한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촛불 이후 한국 사회를 말한다’ 시리즈에서 아쉬웠던 것은 뭉뚱그려서 이런 방향으로 가자고 제시한 점입니다. 독자들은 그 다음 단계의 구체적인 대안을 원합니다.
이 위원장=탄핵 절차는 의회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뿌리 내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정치인, 국민, 언론이 이런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탄핵이 의결된 후, 국회는 한국 정치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방향 제시를 했어야 합니다. 언론도 짚어줬어야 했습니다. 국회가 탄핵을 던져 놓고 사실상 아무것도 안 한 것과 마찬가지 아닙니까. 다른 나라는 의회에서 한번 의결하면 끝나지만, 왜 우리는 정치적 색채와 법률적 의미를 가진 두 가지 탄핵 절차를 활용하고 있는지 언론에서 잘 다루지 않았습니다. 정치 상황에 매몰됐기 때문입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 의결은 됐지만 탄핵 재판 결과는 해봐야 한다고 절차와 의미를 제대로 알려주고, 국민이 판단하게끔 해줬어야 합니다.
김 위원=특검과 탄핵 절차가 같이 진행되니까 헌재에서 진행되는 법리적 논쟁보다 특검에서 나오는 여러 혐의점이 독자의 시선과 흥미를 끄는 측면도 있습니다. 탄핵 절차, 청구인과 피청구인의 논리 등을 분석해 줘야 하는데, 특검에서 나오는 피의 사실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건의 본질보다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식의 보도가 있었다는 점을 반성합니다.
신 위원=정론지의 표현은 나라와 국민을 위한 것이 되어야지 흥미 위주로 흘러서는 안 됩니다. 헌재, 특검, 형사재판의 비중이 다른데 한꺼번에 섞여서 재미있는 것 위주로 기사가 나가는 현상이 아쉬웠습니다. 일부 방송과 인터넷 신문 등이 흥미 위주로 가는 건 이해가 되지만, 정론지만큼은 표현기관으로서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충실한 보도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강 위원=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게 해야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동아의 최근 지면에서 헌재 심판을 여론 갖고 할 순 없지 않나 하는 내용이 가끔 나오는데, 맥락상에선 맞을 수 있겠지만 여론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순 없지 않습니까. 국민의 70∼80%가 탄핵 찬성이라는 여론조사도 있는데, 탄핵 관련 편집을 기계적 중립으로 대등하게 하면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이 위원장=선고가 얼마 남지 않은 헌재의 탄핵 심판과 관련해 동아가 앞으로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 할까요.
조 위원=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법치에 기반을 둔 재판이 이뤄지도록 하는 데 보도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촛불이나 태극기 집회 참가자가 많기는 하지만 침묵하는 다수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 위원=제목은 흥미 있게 뽑아놨는데 내용과 매치가 안 되고, 내용 자체도 부실한 기사가 종종 눈에 띕니다. 애매모호한 헤드라인도 적지 않습니다. 2월 13일자 ‘바른정당 끝장토론 국정농단 세력과 연대는 없다’도 그런 경우입니다. 독자로부터 외면받지 않도록 기사의 품질과 전문성, 경쟁지와의 차별성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 위원장=탄핵 재판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최종적인 준비서면, 최종 변론 등 당사자의 입장이 다 나올 것입니다. 이를 객관적으로 잘 분석해서 독자에게 전달하고 판단할 수 있게끔 해 주길 바랍니다. 탄핵 절차가 의회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해 한 단계 발전하는 나라로 갈 수 있도록 동아가 역할을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정리=김동원 daviskim@donga.com·송충현 기자